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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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홍콩 사람들은 벌떼처럼 선전 쪽으로 몰려들었다. 홍콩에서 선전으로 가는 건 아주 쉬웠다. 사내와 계집이 서로 끌어안는 것만큼이나. 백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찌 끌어안지 않겠는가?

결혼식은 아주 간단히 치를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예쁘게 꾸며봤자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인의 결혼식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방면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지 모른다. 그런 재능이 밖으로 드러날 때 그 자신은 단지 한 가지 사실만 알 뿐이다. 해보니까 쉽구나.

욕망이란 사방으로 뚫린 길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한줄기인가 싶지만 그 뼈대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무한히 복잡하고 무한히 굴곡진 가지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다.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

샤오쿵의 남자친구에 대해, 샤오쿵의 부모님은 단 한 가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바람이라기보다는 명령이었다. 다른 것은 아쉬운 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시력에 대해서는 분명한 요구 사항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예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 멀리 선전으로 떠나기 전날 밤, 부모님은 샤오쿵에게 분명히 말했다. 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우리는 전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삶이라는 것은 ‘살아가는‘것이지, ‘더듬어가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네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니, 우리는 너를 더듬어 가며 살아가는 남자한테는 절대로 시집보낼 수 없다!

샤오쿵은 줄곧 자기 감정이 지나치지 않도록 억누르고 경계했다. 그러나 젊은 여자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경계심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은 천리 둑이 개미굴 하나에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개미와 같다. 샤오쿵은 자신의 천리 둑에 아주아주 작은 구멍을 하나 냈을 뿐이었다. 나중에 가서 어떻게 막아보려는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샤오쿵은 울어버렸다. 실컷 울고 난 뒤에는 사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울함은 이자와 같아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

사랑은 입고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땔감이나 쌀, 소금, 기름, 식초, 차 그리고 약 따위로 골치를 썩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을 매혹한다.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사랑일지라도. 보기만이라도 하자.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타이라이는 이제 막 한 차례의 연애를 끝낸 참이었다. 한 남자가 연애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결혼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애가 있는지 없는지...진옌은 이런 문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쓰는 문제는 그 남자의 여자에 대한 태도, 특히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태도였다. 타이라이는 목숨을 건 사랑에서 이제 겨우 바닥을 치고 살아난 참이었다. 목숨을 건지자마자 태도를 바꾸어 곧바로 진옌에게 그 말을 내뱉는다면, 진옌의 마음은 도리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 것이다. 진옌은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사랑 고백은 푹 고아낸 곰국 같아야 하는 법.

- 타이라이, 나 예뻐요. 꽤 미인이라고요. 알고 있어요?
- 알아
- 한 번 만져봐요. 예뻐요?
- 예뻐.
- 다시 한번 만져봐요.예뻐요?
- 예뻐.
- 어떻게 예쁜데요?
귀타이라이는 난처했다. 그는 선천적인 맹인이었다. 예쁜 게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다. 쉬타이라이는 한참을 묵묵히 숨을 참고 있다가 마치 선서라도 하는 것처럼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홍사오러우(돼지고기 간장볶음)보다 예뻐

화촉동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섹스다. 그러나 그냥 섹스가 아니다. 성적 요소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특수한 종류의 친밀감이다. 신랑과 신부는 부부이면서, 오빠오 ㅏ동생 혹은 누나와 동생이기도 하다. 서구적인 사고로는 이 점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신랑이 어떻게 신부의 오빠가 될 수 있고 신부가 어떻게 신랑의 누이동생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패륜이라고 하겠지만 중국인에게는 이야말론 천륜과 인륜에 부합하는 일이다. 전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점은 중국인들에게만 있고 중국인들만 이해하고 중국인이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정서다. 이것이 동양의 성이요, 정이다. 진옌은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인생에는 세 가지 좋은 일이 있다고 했다. 화촉동방으로 첫날밤을 보내는 일,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일, 타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화촉동방을 맨 앞에 둔 것은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 길게 봐야 한다. 길게 보면 삶은 아룸다운 것이다. 조급하게 굴지 말자.

닥터 왕은 한 선배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맹인이고 여자였던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었다. 돈이란 건 어린 자식과 같아. 잠깐 한눈을 팔거나 제대로 붙잡고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품에서 빠져나가고 말지.

몸 파는 여자는 그냥 파는 것이다. 난징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을 빌리면 그것은 ‘돈 고생‘이었다. 난징 사람들은 돈을 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무척 고생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번다고 하지 않고 돈 고생을 한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몸 파는 여자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보다 더 적나라하게, 더욱 생동감 넘치게, 자신들의 일을 돈 맞기 라고 불렀다.

강물은 변함없이 동쪽으로 흘러간다.
(남당 황제 이욱의 사에 실린 구절로 강이 동쪽으로 흐르듯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연인에게 향한다는 뜻)

닥터 왕은 희미하게 웃었다. 연애하는 사람은 모두 바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푸밍은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짝사랑에 빠진 것뿐이었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그보다 더한 구제불능 머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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