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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땐 어른이 되는 것은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돈, 직업, 배우자, 가정 같은 유무형의 것을 얻으며 홀로 떨어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서른 언저리가 되어 보니 사람들은 하나를 얻는 만큼 다른 하나를 내어주는 것 같았다. 가령 예를 들어 안정적인 일자리와 매끈하게 사람을 대하는 '어른스러운' 태도를 얻는다면 삶에 대한 낭만적 전망이나 일상에서의 적극성은 조금 잃어버린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나마 인생과 그런 주고받는 거래라도 하면 다행일 것이다. 서른을 지나치자 거래라고 말하기도 안타까운, 더이상 돌이킬 수 없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이라면 그런 경험을 통해서라도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제자리란 애초에 없었고 우리의 인생은 앞의 인생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흘러갈 뿐이다. 쓰러져 넘어가는 도미노 블럭들처럼. 돌이킬 수 없다.
사실 인생의 상실 혹은 영혼의 훼손 같은 개념은 20세기 개인들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개념일수도 있다. 이전 시대에도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을 테지만 애초에 그들은 인생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적었고 그들의 상실은 20세기 사람들의 상실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을테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실과 훼손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건 20세기라고 봐야 할 텐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주제를 파고들어 상실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이후 인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인생에는 물때가 있고 한 번 지나간 물때는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의 시기는 극히 짧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같은, 인생은 당신을 기다려 주지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지금 주어진 젊음과 청춘을 살아가는 것 또한 딱히 당신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잔혹한 이야기이다. 차가운 진실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온화한 태도가 그가 이야기하는 진실을 독자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라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그의 믿음이 글의 행간에서 느껴져서이리라.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가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아프고 괴롭다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다시 또 하루 하루를 차곡차곡 살아가야 합니다. 하는, 하루키의 인생론은 현대인들에게 성경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
이 소설은 하루키가 40대 초반쯤에 쓴 소설 같은데 40대라면 30대의 방황과 상실을 자신의 글로 구체화시켜 소설이란 무형의 예술물로 빚어낼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인것 같다. 조금 힘이 넘치긴 한다. 상실의 경험이 아직 너무도 강하게 남아있을테니까. 그래서 좋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직설적인 면이 많지만 또 그 나이대엔 그 나이대에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니까. 서사 자체는 그런 그의 에너지 넘치는 직설성이 조금 아쉬웠지만 문장은 지금껏 읽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연약한 인간의 성장과 상실 방황 그리고 고뇌까지 그만의 깔끔한 문장들로 차분히 그려진다. 작가의 힘이다. 상실을 찌질하게 그리지 않아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아름다운건 좋은 것이다. 차가운 진실도 은유로 이야기 하는 판에 꾸질꾸질한 찌질함까지 굳이 그려낼 이유가 무언가. 세련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따뜻한. 그가 괜히 세기의 작가가 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부디 철저한 건강관리로 오래오래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건네주길 바랄뿐이다.
* 리뷰의 제목은 살며시 찌그러진 담배라는 표현이 소설에서 나와 마음에 들어 달아본 것이다. 현실의 우리 인생은 살며시 찌그러진 담배보다는 거칠게 구겨져 발에 차이는 알루미늄 캔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최소한 하루키의 소설 속 우리는 살며시 찌그러진 담배처럼 상처받는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