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여행은 끝났고, 영원한 휴식이 오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말끔히 면도한 갸름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균형 잡혔으며, 평온하지만 예리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 얼굴은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남들의 시샘을 받을 만큼 성공만 한 것이 아니라, 해롭지 않은 실패도 상당히 경험했음을 말해 주는 듯했다. 그는 분명 남자로서 대단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많은 일들이 발생한 집을 좋아한다면 피렌체로 가야지. 특히 죽음이라면 더 그래. 난 세 사람이 살해되었던 오래된 대저택에 살고 있거든. 알려진 것만 세 명이고, 그 밖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있는지는 몰라.
글쎄, 난 원서를 좋아하지 않아. 번역본이 좋지. 이사벨은 외국어로 씌었어.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겠소. 아마 그녀는 아르메니아 사람이나 포르투갈 사람하고나 결혼해야 될걸.
지금의 방식대로 산다는 건 형편없이 번역된 양서를 읽는 것과 같았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미워하게 될까? -어느 쪽이든 그 친구는 전혀 상관 없을 거야. 남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남자로서 난 그 여자를 싫어해야 할 것 같은데. 괴몰 같은 여자겠지? 꽤나 못생기고. - 아니, 무척 예뻐. - 여성 기자라. 스커트를 입은 신문 기자란 말이지? 빨리 만나 보고 싶은걸. - 그 친구를 비웃는 건 쉬워도 그녀만큼 용감해지는 건 쉽지 않아.
나 자신을 속박하지 않겠다는 소원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해. 난 결혼을 통해 인생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 여자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많으니까. ...난 다른 젊은이들이 하듯이 인생을 찾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나 자신에 대해 살펴보고 싶을 뿐이야
- 너 좋을 대로 하자꾸나. 그런데 그게 좋은 일인지 의문이구나. 넌 그 아이의 돛에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하는데, 너무 많이 불어넣는 것 아니냐? -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하는 걸 보고 싶은걸요! - 단지 네 즐거움을 위해서로구나 - 즐거움이죠. 커다란 즐거움이 될 거예요. - 글쎄, 난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젊었을 때와 사뭇 달라. 나는 젊었을 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거든. 그런데 넌 내게 없었던 망설임이 있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는구나. 그러니까 이사벨은 자유인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아이가 부자가 되면 돈 때문에 결혼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지. 그렇게 할 아이라고 생각하니? - 그럼요. 하지만 이사벨은 과거 어느 때보다 돈이 없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돈을 낭비하는 습성 때문에 모두 써 버렸대요. 지금 그녀가 먹을 거라고는 성찬에서 남은 빵 부스러기뿐이고, 남은 재산이 얼마나 변변찮은지도 모른대요.
- 집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 그건 좀 모자라는 말이군요.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모든 인간에겐 껍질이 있다는 것을 참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돼요. 껍질이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말하는 거예요. 이것으로부터 고립된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답니다. ‘자아‘라는 건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 걸까요? 자아는 우리에게 붙어 있는 모든 것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다시 흘러나와요. 나는 나 자신의 대부분이 내가 골라 입는 옷에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물건을 아주 소중히 여긴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개인의 자아는 자신을 스스로 표현한 것이거든요. 집이며 가구, 옷, 우리가 읽는 책, 사귀는 친구, 이 모든 것이 모두 자아를 표현하지요.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이모부님이 내게 그토록 많은 돈을 남기시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있었어? - 이사벨, 내가 알았든 몰랐든 무슨 문제겠어? 아버지는 고집이 센 분이셨는데. - 왜 그런 일을 하셨을까? - 칭찬하는 차원쯤 되겠지. - 무엇에 대한 칭찬? - 네가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 준 것에 대한 칭찬.
이사벨은 얼마 동안 이모 곁에 있기로 했다. 이상한 충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반적으로 품위 있게 여겨지기를 무척 바랐고, 친척이 없는 젊은 숙녀란 잎이 떨어진 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것이 너에게 좋은 건지 아니면 저것이 좋은 건지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 양심을 너무 혹사하면 안 돼. 그러면 손끝으로 친 피아노처럼 엉망이 돼 버릴 거야. 보다 소중한 기회를 위해 양심을 보존해야 돼. 네 성격을 다듬으려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건 마치 팽팽하고 부드럽고 어린 장미꽃 봉오리를 잡아당겨 억지로 꽃을 피우게 하는 것과 같아. 너 좋은 대로 살다 보면 성격은 저절로 형성되는 거야.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오" 오스먼드는 감정이 거의 배제된 신중한 어조로 사랑 고백을 되풀이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말이었다.
그녀는 영리하고 너그러웠으며, 고상하고 자유로운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할 셈인가? 이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여성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아한 모습으로, 다소간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가 들어와 어떤 운명을 제시해주길 기다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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