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생리가 사라졌다. 그 뒤로 몸에 정적이 찾아온 듯 평온함이 퍼져 나갔다. 폐경에도 여러 가지 끝나는 과정이 있다고 하던데, 노리코의 경우는 딱 하고 멈춰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여자로서는 이제 끝난 거야.' 하며 크게 낙담하는 여성도 있다던데, 노리코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에 생리량이 많은 편이어서 젊은 시절부터 고생을 해왔다. 이제는 여행일정을 세우거나 하얀 팬티를 입을때 일일이 신경쓰지 ㅇ낳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아이를 낳아 보지도 못하고 끝나 버린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255쪽
"어머니 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해요. 저, 정말 바보였어요. 이번 일로 드디어 눈을 떴어요. 저 이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일을 할 거에요." "설마 너, 노리코 아줌마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 작정은 아니겠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은 하지마라" "어째서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 지나면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거야. 뭐니뭐니 해도 그게 결국은 가장 행복한 거니까." 사에가 얼굴을 들었다. "어머닌 행복했어요?" "뭐..." 한순간 기가 꺾이기는 했지만 가오루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행복했어" "그럼 노리코 아주머니는 불행했다고 생각해요?" "그건...다른 사람일이니 잘 모르지" "그렇잖아요, 행복이란 사람들마다 다르게 마련이에요.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에는 정색을 하고 가오루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는 결혼 같은 거 생각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평생 독신으로 있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에요. 적절한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런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어요. 다만 그런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을 기대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는 제 발로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292쪽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자식이란 세 살까지 평생 갚아야 할 은혜를 다 갚는다는 말을. 그럴지도 모른다. 어린 사에를 가슴에 안았을 때의 행복감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오루의 가슴은 따뜻하게 차오른다.-295쪽
오래 살다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져간다. 좋아야 8승7채 나빠야 7승8패. 인생이란 그런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마지막에 가까워 올수록 지는 쪽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벌써 환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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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평균 연령까지 산다고 치면, 앞으로 25년이구나..." 긴 걸까 , 짧은 걸까. 나이를 이렇게 역산하는 연배에 들어섰다는 것만은 확실했다.-297쪽
고독한 노후.
그것은 젊은 시절에 오히려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다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비관하든 낙관하든 인간사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낙관적으로 사는 것이 훨씬 득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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