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갖고 싶은게 많은지 모르겠다.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면 돈의 흐름이 예상되니 할부라도 긁겠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으니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물욕을 더더욱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딱히 사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본적인 삶을 돌보는 부분이라 생각하는데도 돈이 엄청나게 든다. 


우선 지멋대로 재부팅을 반복하는 저 휴대폰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입주할때부터 아파트에 달려있는 오랑캐 같은, 근본없이 못생긴 저 주방 식탁등도 갈고 싶다. 이젠 흔하고 흔하다지만 루이스 풀센의 등으로 달고 싶은데 직구를 해서 단다고 해도 등값이며 인건비며 돈백은 쉽게 깨지겠지. 한남동 가면 인테리어 편집샵 여기저기 색깔색깔 달린 그 흔하디 흔한 루이스 풀센을 부엌에 걸고 싶어서 나는 2016년 신년 목표로까지 부엌등 갈기를 내걸었었다. 물론 돈뿐 아니라 그걸 해치울 의지와 노력과 패기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목표였지만 돈에 쪼들리며 2016년이 막바지로 치닫는 지금 생각해보니 - 사실 돈이 아주 넉넉했더라면 의지와 노력과 패기 그 모든게 다 뭐 필요있었을까 650유로 주고 직구할 필요도 없이 관세내느라 우체국 갈 필요도 없이 ph5의 긴 전깃줄을 한국식 낮은 아파트 천장에 맞게 자를 줄 아는 솜씨좋은 기술자 찾느라 품 팔일 없이 그냥 한남동에서 190만원인가 250만원인가 카드 긁으면 그만인 것을.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커튼. 입주한지 어언 몇년인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미니멀리스트와 레이지니스트의 경계 어딘가에서 방황하며 커튼과 블라인드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이 아파트에 살아왔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지나가다 눈에 들어온 커튼 가게에 들어가 견적을 받으니 거실 빼고 방4개 커튼 견적이 156만원인가 그렇다. 내가 원하는 암막으로 하려면 지금 선택한 고급원단 뒤에 암막원단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건 방 하나당 14만원이 더 든단다. 그래서 커튼 값으로 최소 150만원의 지출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갖고 싶어 몇 달이나 눈 앞에 아른거리는 발렌시아가의 가방이 150-200만원 또 역시나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귀걸이는 50만원... 이것들은 언제나 가장 후순위로 밀려있지만 가장 또 강렬하게 바라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내년 아빠의 환갑을 맞이해 무얼할까 생각하다 가족 초상화를 작가에게 의뢰해 그림으로 남기고 싶단 생각을 하였는데 보통 작가들의 그림 사이즈에 따른 가격만 생각해도 최소 300은-500이니 거기에 우리 가족을 그려달라고 의뢰하고 이리 해달라 저리 해달라 구는 값까지 치면 돈은 더 많이 필요하겠지. 정말 이렇게나 창의적이고 예술적으로 돈쓸생각을 하는 나란 인간! 


10월에 친구들과 홍콩에 가자고 티케팅을 한 것이 8월이었는데 여자친구들과 같이 가는 여행이라고 하니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돈 쓸 생각부터 했다. 비싼 애프터눈 티를 마셔야 하고 비싼 음식점에 가야 하고 제일 전망이 좋다는 호텔에 묵으며 수영도 해야 하며...그리고 그렇게 돈 쓸 궁리를 하자 갑자기 장사에 더 열성적으로 매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기세로 물건을 팔았고 이번달에는 장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 매출도 올렸다. 그런데 왜 내 주머니에 남는 돈은 없는 것인가? 장사의 세상이여...(장사가 커지고 물건 굴리는 규모가 늘어나니 번만큼 재고를 더 들여야 했다) 아빠가 사업을 해서 이십년을 그리 견뎠다. 지금도 엄마는 당시를 돌이키며 직원들 월급날이며 각종 거래처 결제날 다가오면 통장이 빵꾸나는거 아닌가 마음이 졸여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말인지 이제 알겠다. 절절이 알겠다. 직원 월급도 없이 나 하나 장사 굴리는 것도 이리 숨이 콱콱 막히는데 엄마는 그걸 20년 했으니...  나는 돈만 잘 벌면 세상만사 복세편살하며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품위유지 느긋히 하면서. 근데 벌어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번 것보다 더 바라고 그렇게 돈돈 바라는 마음으로 복세편살 품위유지는 불가능하다. 내 장사라 신경이 예민해 잠을 못 자고 견디다 잠병이 나기도 하였다. 어디서나 널부러져 자기로 유명했던 나 같은 인간이 잠을 못자 병이 나다니! 그래서 어제도 예민한 신경으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도 싫지만 이것 역시 내가 바라던 그런 삶은 아니다. 이렇게 가봐야 정말 뻔한 인생일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장사를 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학교나 직장에서 배우지 못했던 많은 것을 몸으로 배워서 너무나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했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홍콩 여행가서 실컷 웃고 오면 좀 리프레쉬가 될까? 내가 장사를 하며 뿌듯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직접 돈이 오가는 '남의 돈 먹는' 일을 하면서도 다툼을 벌인 적이 없고 인간에 대한 냉소치가 더 심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하면서 인간을 뭣같이 보게 되어 내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고 그것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욱씬하기도 하였다. 왜 우리는 그렇게 일당 십만원되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서로를 미워해야 했을까요. 그런 일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일이 싫어서 장사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늘 최선의 태도와 진심과 예의로 대했다. 그리고 정말로 다행히 나는 내 예의에 똑같이 예의로 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 고가라 대부분의 고객이 30대 이상 고수입의 여성이라는 점도 있으리라. 그렇다 하여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장사를 해왔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이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였다. 내 선에서 인간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이 장점을 지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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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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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6 0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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