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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야상곡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이 소설은 문장으로는 그리 난해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꽤 난해한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든, 소설의 화자와 함께 인도를 여행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반세기쯤 전의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한 친구를 찾기 위해 인도의 이 곳과 저 곳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데, 그가 어느 지명 하나만 던져도 나는 그와 관련된 기억을 공감각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이라 이 목적없는 소설의 흐름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이다.
"케이지 지구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어느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들에서 그곳을 본 적이 있었기에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직면할 준비야 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진은 어디까지나 피사체를 정방형에 가둬둔 것이다. 프레임 바깥의 피사체는 언제나 또다른 무엇이다. 게다가 그 피사체는 너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 많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문장을 보고서는 길거리의 소똥 냄새, 갠지스 강둑의 시체 타는 냄새, 노점에서 기름에 무언가를 튀겨내는 냄새, 도로의 툭툭이 뿜어내는 매연 냄새,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향 냄새를 순식간에 기억해내는 그런 것. 독자들은 세밀한 묘사가 아니라 작가의 통찰이 담긴 짧막한 단어 혹은 상황으로 그동안 묻어두었던 오랜 추억을 꺼내게 된다. 고작 백 페이지의 짧은 소설을 읽고서 인도 남부를 한바퀴 돈 것만 같은 상념에 잠기게 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인도의 샤워헤드가 떨어져 나간 샤워기와 호화로운 따즈호텔, 길을 달리다 갑자기 서 버리는 버스가 무엇인지 아는 독자들에겐 뼛속까지 와닿을 작품. 하지만 보통의 소설들처럼 서사가 독자의 손목을 잡아 작품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아무도 모르는 숲 속을 헤쳐나가는 느낌으로 스스로 한 발 한 발 내딛어 읽어 나가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인도를 여행한 경험이 전혀 없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힘이 들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