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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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의 봄, 스미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럽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존재를 남김없이 쓰러뜨렸고, 하늘 높이 감아 올려 철저히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건너 앙코츠와트를 무자비하게 붕괴시키고, 한 무리의 불쌍한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 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바람이 되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성으로 이루어진 어떤 도시를 통째로 모래로 묻어 버렸다.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실 나는 스미레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으로 말을 나누었을 때부터 강렬하게 마음이 이끌렸고, 그것은 나중에 돌이킬 수 엇을 정도의 감정으로 조금씩 변해 갔다.

스미레는, 자기가 이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확신했다. 틀림없다. (얼음은 차갑고 장미는 붉다)

"둘이서 한 병을 주문하면 아깝잖아요. 절반도 마시지 못하는데."
언젠가 스미레가 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건 상관없어요."
뮤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와인은 많이 남길수록 그 가게에서 일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맛을 볼 수 있어요. 소멀리에, 헤드웨이터를 비롯해서 주방에서 그릇을 닦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와인맛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값비싼 와인을 주문해서 많이 남기는 건 낭비가 아니에요."
뮤는 1986년산 메도크의 색깔을 확인한 뒤에 문체를 음미하듯 여러 각도에서 정성스럽게 맛보았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결국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움직이고 자기의 돈을 지불해서 배우는 거예요. 책에서 얻는 기성품 같은 지식이 아니라."

당신은 가끔 놀라울 정도로 상냥해질 때가 있어. 마치 크리스마스와 여름 방학과 갓 태어난 강아지가 공존하고 있는 사람 같아.

너는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썼던 거야. 쓰고 싶지 않으면 쓸 필요가 없어. 네가 소설 쓰기를 그만둔다고 해서 도시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냐. 배가 침몰되는 것도 아니고, 밀물과 썰물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도 아냐. 혁명이 5년 늦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그런 건 아무도 변절이라고 부르지 않아.

내게 있어서, 스미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스미레는 그녀밖에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해준 것이다. 스미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또는 그녀가 쓴 문장을 읽고 있을 때, 내 의식은 조용히 확대되어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다. 스미레와 나는 마치 보통의 젊은 커플이 옷을 벗고 서로의 나체를 탐닉하듯 각각의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장소, 다른 상대와는 경험해 볹거이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고, 우리는 그런 서로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소중하고 정중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나는 스미레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원했다. 어디에도 갈 수 없다고 해서 그 마음을 간단히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 작은 불꽃 같은 것이다. 주의 깊고 운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유지하여 커다란 횃불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 불꽃은 꺼져버리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

외톨이로 지낸다는 건 비내리는 저녁에 커다란 강 입구에 서서 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와 같은 기분이야. 비내리는 저녁에 커다란 강 입구에 서서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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