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서 있을 때와 앉아 있을 때 전혀 생각하는 게 달라지나 보다. 앉아 있을 때에는 왠지 맥없이 무기력한 일들만 생각하게 된다. 내 맞은편 자리에는 네뎃 사람, 같은 또래의 샐러리맨들이 멍청하게 앉아 있다. 서른 남짓으로 보이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이 멀뚱하고 혼탁하다. 패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들 중 누군가에게 슬그머니 웃어 보인다면 그 웃음 한 번만으로 나는 질질 끌려가서 그 사라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국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소 한 번으로 족하다. 무섭다. 이상한 노릇이다. 조심해야겠다.
바람이 세찬 탓일까. 구름이 유난히 예쁘다. 마당 한쪽에 장미 네 송이가 피어 있다. 노랑 하나, 하양 둘, 분홍 하나. 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인간에게도 분명 좋은 면이 있다고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인간이고, 꽃을 사랑하는 것도 인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