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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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의 스물넷은 남자의 서른 살에 해당한다. 도리도 모르고 부정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안정되는지도 물론 모른다. 위대한 고금의 무대가 한없이 발전하는 가운데 자신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물론 모른다. 다만 말주변만은 뛰어나다. 천하를 상대로 하는 일도,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일도, 일단의 군중 앞에서 일을 처리하는 일도 여자는 할 수 없다. 여자는 단지 한 사람을 상대하는 재주는 터득하고 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싸울때 이기는 사람은 항상 여자다. 남자는 항상 진다.

금은 색이 순수하고 진하다. 부귀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색을 좋아한다. 영예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색을 고른다. 명성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이 색으로 장식한다.

꿈을 버릴까? 버릴 수 있는 꿈이라면 밝은 곳으로 나가기 전에 버리면 된다. 버리면 꿈이 달려든다.

5년 동안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목숨보다 확실한 꿈속에 있던 오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5년 전은 옛날이다. 서쪽과 동쪽으로 갈리고, 길고 짧은 옷소매로 갈리고, 이별의 슬픔을 가리는 저녁 구름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의 빗장이 되어, 만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진 지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바람불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비 내리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달밤에 핀 꽃을 보고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개미는 단것에 모이고 사람은 새로운 것에 모인다. 문명인은 격렬한 생존 가운데서 무료함을 한탄한다. 서서 세 번의 식사를 하는 분주함을 견디고 길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병을 걱정한다. 삶을 마음대로 맡기고 죽음을 마음대로 탐하는 것이 문명인이다. 문명인만큼 자신의 활동을 자랑하는 자도, 문명인만큼 자신의 침체에 괴로워하는 자도 없다. 문명은 사람의 신경을 면도칼로 깎고 사람의 정신을 나무공이로 둔하게 한다.

늙어서 자식이 없으면 불안하다. 노후에 기댈 자식이 없으면 더욱 불안하다. 기댈 자식이 남이 되는 것은 불안한 데다 꺼림칙하기까지 하다. 기댈 자식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 되는 법도는 꺼림칙할 뿐만 아니라 무정하다.

긴고는 부모라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담는 물의 모양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그대로가 좋습니다. 움직이면 변하지요.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움직이면요?"
"예, 사랑을 하면 변합니다."
여자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꿀꺽 삼킨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시집을 가면 변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그대로가 좋습니다. 시집을 가기에는 아깝습니다."

"서양은 사람을 두 유형으로 꾸며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두 유형이라니?"
"예의 없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면요. 성가시니까요."
"일본도 그렇지 않으냐? 문명의 압박이 심하니까 겉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지."
"그 대신에 생존경쟁도 치열하게 되니까 내면은 점점 무례해지겠지요."

세상에는 진지함이 어떤 건지 평생 알지도 못한 채 끝내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네. 껍데기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흙으로만 만들어진 인형이나 다를 바 없지. 진지함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있는데도 인형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네. 진지해지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네.

인간은 진지해질 기회가 거듭될수록 완성되어가지. 인간다운 기분이 드는 거네.

길을 나서면 무언의 객
집을 나서면 머리를 깎지 않은 중

문제는 무수하게 존재한다. 좁쌀인가 쌀인가, 이는 희극이다. 공인가 상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저 여자인가 이 여자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쓰즈레오리인가 슈친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영어인가 독일어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이 모든 것이 희극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삶인가 죽음인가. 이것이 비극이다.

10년은 3천6백 일이다. 아침부터 밤가지 보통 사람의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문제는 모두 희극이다. 3천6백 일 내내 희극을 행하는 자는 결국 비극을 잊는다. 어떻게 삶을 해석할까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이 삶과 저 삶의 선택에 바쁘기에 삶과 죽음이라는 최대 문제를 방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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