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구판절판


카운터 뒤에 여러 종류의 담배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편의점을 한 바퀴 돌았다. 냉장고 옆쪽으로 10대로 보이는 남녀가 간이 식탁 위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같이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입 좀 다물고 먹어. 후루룩 짭짭, 그게 뭐냐? 여자애가."
"남 말 하네. 너 먹는 소리가 백배는 더 크거든요."
"뭐? 너? 이게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너 오빠한테 자꾸 그러면 확, 한 번 더 해버린다."
말과 동시에 남자애가 여자애의 허리를 확 당겨 안았다. 여자애가 꺄악, 소리를 지르며 간이식탁을 붙잡았다. 그 바람에 라면 용기가 떨어지면서 옆으로 지나가던 내게 국물이 쏟아졌다.
"엄마!"
얼른 옆으로 비켜섰지만 이미 추리닝 윗도리에 라면 가락과 야채 조각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뒤였다.
"어머, 어떡해."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애가 남자애 품으로 파고들었다.
"죄송합니다."
남자애가 여자애를 당겨 안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로 꼭 끌어안고 나를 응시하는 남녀. 무슨 대단한 적군이라도 만난 것처럼 서로를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애 얼굴은 군데군데 화장이 지워져 있고, 남자애 얼굴에는 자신-470쪽

감이 넘친다. 막 성관계를 마치고 나온 연인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인생의 비밀스러운 곳을 함께 탐험하고 온 이들 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긴밀하고 친근한 분위기였다. 순간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질투심이 치솟았다. 이 아이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건전한가. 술에 취해 몸을 섞은 뒤 단절로 대응했던 태환과 나보다는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성관계를 암시하는 말을 타인이 알아챌 정도로 함부로 내뱉는 이들이 백배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우리라.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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