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산문집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11월
구판절판


용감한 사람들

나는 무익한 것도 느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 과감하게 무익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을 존중한다. 우리는 모두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다..... 아주 유능하다. 나는 용기있게 '나' 또는 '아름답고 무정한 권태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같은 말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가능성과 관련하여...'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처럼 구는 사람들은 절대로 높이 사지 않는다. -11쪽

운명

사람들은 언제나 운명이 번개와 번득이는 불꽃, 티파니와 북, 트럼펫을 거느리고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이닥친다고 믿는다. 그러다 어느 날 운명에 부딪히면 그 매너가 훨씬 더 섬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폐암, 빈곤, 굴욕, 아니면 치명적인 사랑이 살며시 나타나 문을 두드리고는 정중하게 허락을 청한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고 나서야 들어온다. -63쪽

연민

동물들은 연민을 안다. 그것은 원시적인 연민, 더듬거리는 외마디 연민이다. 내가 어쩌다 삶이나 문학 논쟁에서 한 방 먹거나 아픈 곳을 찔리면 개는 정확하게 내 상처를 안다. 개는 다가와서 내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고, 다 안다는 듯이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슬기롭게 위로한다. "기운을 내, 곧 다시 좋아질 거야." 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결코 좋아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동물의 연민은 고매하고 용감하다. 그들은 위로하는 게 아니라 확인할 뿐이다. 이런 객관성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편안하게 한다.-77쪽

당장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십 년 전부터 구상해온 소설을 드디어 쓰자. 그동안 나는 이 과제를 미루려고 수십 권의 다른 책을 썼다. 또 중국과 그린랜드로 여행을 하고, 가족을 일구어 적어도 아이를 셋은 낳고, 이따금 로빈슨과 카사노바처럼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인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확실한 것을 알려주는 삼사천권의 책을 읽고, 독립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더 독립적이 되기 위해서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포기하고, 죽음과 친근해지고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이제 이런 일들을 더 미루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런 것들을 성취하지 못하거나 소유하지 못한 삶은 덧없고 의미없다. 이 모든 것은 내 의무이고, 또 당장 나한테 필요한 일이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이 오면, 출발 오 분 전에야 짐을 꾸리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여행자처럼 허둥지둥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 지금 시작하자. 당장, 우리 삶을 꾸리자. -84쪽

절대로 가격을 흥정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삶.-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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