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 - 개정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4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의 시대를 읽고 이디스 워튼이 제인 오스틴보다 낫다고 생각했지만 '기쁨의 집'으로 한 방 먹고 '여름'으로 니킥까지 맞고 나니 가슴이 너덜너덜해졌던 기억이 있다. 못생기고 가난해서 노처녀로 세상을 떠난 이가 그린 달달한 세상이 전 세계의 여심을 흔들고, 뉴욕 상류층 출신에 빠리에서 작품활동하며 소설같은 인생을 산 여성이 그린 삶의 진실이란 것은 이렇게도 슬프고 씁쓸하다니 정말 인생은 아이러니 아닌지. 이 작품은 워튼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거칠고 잔인하다는 느낌이다. 미국에선 중고교생 필독서로 분류된다 하는데 애들이 보아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플롯은 간단하다. 가난한 농장주인 이선프롬은 이십대 초반, 병약한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떠나려는 사촌누나를 단지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렵다는 어리석은 이유로 붙잡아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 후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며 투덜거리고 자기 전엔 침대 맡에 틀니를 놔두는 지긋지긋한 여자가 되어버린 아내와의 생활에 지쳐갈 때 쯤, 아내의 사촌동생이 집안일을 돕겠다며 이선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아내보다 훨씬 어리고 생기발랄한 그녀에게 이선은 점점 매료되고, 아내가 사촌동생을 내보내려 할 수록 둘의 사랑은 더욱 애틋해지는데... 


불륜만 해도 용서받기 힘든데 아내의 여동생과의 불륜이라니 상황만으로 보자면 막장인 둘이지만 이디스 워튼은 이선이 왜 그녀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남자가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을 때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묘사해서 그들의 사랑을 욕할 수 없게 만든다.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차비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빈곤한 사랑의 리얼리티란. 이선은 너 내 여자해라 쿡. 웃으며 고급 부띠끄에서 걸치는 모든 옷을 카드로 긁어주는 드라마 속 재벌3세와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남자이다. 이선이 해 줄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가 아끼는 접시를 깨고서 안절부절하는 애인을 위해 마을로 나가 접착제를 사오는 일 정도일 뿐. 


이 둘의 사랑은 이디스 워튼의 다른 작품들처럼 익숙한 새드엔딩을 맞이한다. 그 새드엔딩 중에서도 더 유별나게 처참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디스 워튼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작가 새디스트 아닌가 의심했을 지도. 혹은 이런 소설로 monogamy의 신성함에 대해 설파하려는 건가 싶어 짜증이 났을지도. 하지만 이디스 워튼이니까.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것보다 더 깊고 더 슬픈 것임을 짐작한다. 


예전 번역보다 나아진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번역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촌스럽고 어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킨들로 검색해보니 0.99달러, 짧은 분량이라 원서로 보아도 좋을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