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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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을 눈물 줄줄 흘리며 읽은 적이 있다. 생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노인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유일한 가족인 손주가 배고픔을 못 이겨 삶은 콩을 허겁지겁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은걸 발견하는 장면이었던가. 노인은 죽은 손주를 보고 통곡한다.(인생) 위화의 문장은 단순하고 간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의 소설은 그 짧은 문장들로 무식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들의 캐릭터들을 묘사하며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결국엔 그 희극적인 모습과 대비되어 더 처절하게 느껴지는 비극을 던져준다.


위화의 소설을 몇 권 보고나선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단순히 너무 슬퍼서는 아니고, 그 슬픔의 원인을 제공하는 중국 사회의 광기와 어떤 맹목성이 어느 순간부터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어쩌면 저럴수가 있지? 하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중국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중국이 그런가보다 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자체 이해를 끝내고 불편한 중국 현대 소설을 더 읽지 않았다. 근데, 이 책을 읽으니 그 불편함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가 된다. 


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단 하루도 장담할 수 없다. 어제의 혁명 영웅이 내일의 반혁명분자가 되어 거리에서 고깔을 쓰고 매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운명이 내 것이 아닌 시대에서 살아간 수억명의 사람들에겐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그 광기와 맹목성이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였다.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

위화의 소설은 운명에 휩쓸려 살아가는 소시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낭만이 아니라 구차함과 더 가까운 그런 운명의 이야기. 그리고 이 에세이는 그런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20세기 중국, 이 시대를 증명한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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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0-2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안그래도 위화의 <인생>을 꼭 한 번 읽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 글을 읽으니 더 읽고싶은걸요 ㅎㅎ

LAYLA 2012-10-29 23:57   좋아요 0 | URL
인생 좋아요. 위화 소설 중에서 인생을 제일 좋아했던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