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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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모습을 본다. -13쪽

닭이 일을 까듯 새끼를 낳던 원시인들은 안 그랬는데 현대인은 자식이 생기면 무조건 겁쟁이가 된다. 자식을 보살피는 것에 한해서만 용감해지고 다른 모든 면에서는 무한대로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18쪽

잭슨 폴록을 유명하게 한 일련의 추상화들은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받았다. 조작된 경우가 아니라면 진정한 천재는 항상 천재와 사기꾼 사이를 오가며 온갖 의심과 오해 속에서 꽃핀다. 누군가 진짜라면 지구의 반 이상은 그의 적인 것이다. 삶의 당파성 없이 칭찬이 자자한 자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다 가짜다. -23쪽

증오와 혐오의 차이는 뭘까? 열등감이 있는 자는 증오하고 우월한 자는 혐오한다. -47쪽

집착하니까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까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 얼마나 이기적이면 첫눈에 반하겠는가. -122쪽

문을 부수는 게 천성이자 운명인 사람들이 있다. 우연히 손에 닿으면 무언가가 부서지는 사람들. 그 문은 한 체제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거대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는 혁명가일 수도 있고 예술가일 수도 있으며 모든 이들을 대신해 시험 받는 자일 수도 있다. 무론 그 문은 문을 넘어서는 어떤 관념적인 실체가 아니라 진짜 철문이거나 나무 문일 수도 있고 그는 그저 성질이 고약한 친구이거나 심심하지 않은 적일 수도 있다. 하여간 그 문이 무엇이건 간에, 문 앞에 서 있는 그가 누구이건 간에, 그에게 문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우연이 다가와 운명처럼 부서지는 것일까. 운명이 다가와 우연히 부서지는 것일까. 오소영이 얼마나 문을 세게 밀어붙이고 나가 버렸는지 주석 경첩이 헐거워져 문짝이 덜렁인다. 그리고 번개의 잔영과 천둥의 여운이 뒤에 남은 정적을 휘감고 있다. 닫힌 문은 부서지면 길이 된다.-152쪽

삶은 어이가 없고 짧으나 술은 달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사막이요 술은 꽃이라고. 신은 질문하지 않는다. 인간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154쪽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다. 연애는 열병과 같은 것이어서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결국 나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연애는 항상 최대의 사업이었다. 아니 유일한 사업이었다, 라고.-202쪽

"너희는 왜 절망을 안 하냐?"
"네?"
"왜 자살을 안 하냐?"
"뭐야, 이 사람?"
"네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뭐 그런 거."
"왜 이러는 거요?"
"작가는 대신 절망해 주는 사람이야. 근데 너희들을 가만 보면 참 존나 건강해. 풍자를 못하면 자살이라도 좀 해 봐라. 외국 작가들 노벨 문학상을 타고서도 자살 많이들 했어. 왜? 절망했으니까. 절망할 줄 알았으니까. 딴따라들도 하는 자살을 작가란 놈들이 글도 못 쓰면서 왜 안 할까? 석연치가 않아. 살아 있는 거야 좋은 거지. 훌륭한 거지. 하지만 내 눈엔 너희들이 절망을 극복해서 살아 있는 놈들로 보이질 않아. 밖으로는 뻔한 사기를 뻔뻔하게 치고 밀실 안에서는 오방 주접들을 떨면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해. 으이그."-261쪽

이성을 잃었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교활한 자들은 교활한 해석밖에는 내리지 못한다.-267쪽

시월의 소녀
-전봉건

내가 사랑하는 소녀가 숨은 사과
한 입 깨물면
나의 소녀는 꽃다발 되어 뛰어나올 거다

새까만 사과 씨는 보석처럼
굴러서 대지에 숨을 거둔다.

시월의
소녀는
사과 속에
숨어 있다. -269쪽

인생은 가볍다. 진지하면 죄가 될 만큼 가볍다.-278쪽

인생은 운명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우연을 닮은 운명이 인간을 농락한다.-292쪽

사랑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의 어려움 속에서도 내 인생은 무엇을 모색하였는가,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녀가 그를 버렸어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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