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 연인들 사랑의 기초
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구판절판


동그랗게 자른 여자친구의 새끼손톱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다정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 남자아이가 갑자기 독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먼지 가루로 우수수 부서져내릴 것 같았다. 첫사랑이 아닌 사랑들에서였다면 결코 견디지 못할 불안이었다.-63쪽

맥주를 마시면서 새벽까지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었다. 일요일엔 정오가 다 되도록 늦잠을 잤고, 교회에 간 어머니가 준비해둔 된장찌개를 가스레인지에 데워 먹거나 계란 두 개를 넣고 라면을 끓여 먹거나 삼선짬뽕을 시켜 먹었다. 누군가 외롭지 않으냐 물어오면 "뭐 그렇죠"라고 대답하는 것은 일종의 관성 때문이었다. 외롭다는 감정과 심심하다는 감정이 어떻게 다른지 사람들은 정확히 구별해낼 수 있을까 간혹 궁금해졌다.-89쪽

마음은 손가락 끝에 존재하고 있다. 여자들은 그 어떤 개인 휴대기기도 존재하지 않던 시대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불안에 빠져들었다.-99쪽

준호의 가슴속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이 한톨 피어올랐다. 이 사람에게라면, 곧 더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달콤한 케이크 위에 사뿐 올라앉은 체리뿐만 아니라 오븐에서 너무 늦게 꺼낸 식빵의 가장자리처럼 누추한 삶의 모서리까지도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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