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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1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달의 아이와 같이 보고 있는데 그 확연히 다른듯하면서도 알수없이 비슷한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역시 위대한(?) 작가가 다르긴 다르구나 ^^;;
어떤 장르를 연재하던 간에 작가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작품에 투영시키는 그 경지는 !
기본 설정은 2060년대ㅡ.
의문사.알수 없는이유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뇌를 조사하는 특수기구가 있다.
이들은 죽은 사람의 뇌를 120%로 활동시켜 죽기 5년 전까지의 영상을 볼수 있다.
인간이 살아서 사용하는 뇌의 용량이 10%가 채 안된다고 하니 그리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이 수사기구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기존의 시미즈 레이코님 작품과 달리 사랑. 애정코드가 거의 없다.
증오, 혼란, 고뇌 등 인간이 느끼는 고통들만 담겨져 있는듯 하다.
먼저 이 작품을 보면서 놀란건 잔인하리만치 섬세한 인체장기들의 묘사이다.
범죄를 소재로 다루다 보니 정말 극도로 엽기적인 사건들이 나오는데 소녀,소년 연쇄 납치 살해사건의 경우 실제 가슴을 열고 심장.내장을 보여주는건 기본이요, 눈알수집장면도 친절히 보여준다.
내가 가장 놀란건 2권에서 시체들이 썩어서 뼈가 되어 정원에서 뒹구는 장면이었는데 2페이지 전체가 해골들로 채워져 있어서 무지하게 무서웠다.
이쯤되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도대체 어떤 책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밤에 혼자 침대에서 볼때 등 뒤가 서늘하고 화장실가기가 좀 두려워지겠지만 그래도 볼만하다는 것이 내 소감이다.
왜냐하면 이 만화에서 다루는 것이 다른 작품들과는 쫌! 다르기 때문이다.
자극적_이라는건 외형적인 문제이고 (물론 이게 중요한 요소이지만)
내용을 보자면 인간의 악은 어디인가 이런 생각이 들정도로 섬칫한 소재들...무엇보다 내가 중점적으로 본것은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뇌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모순과 괴로움이다.
주인공과 수사원들은 그 끔찍한 살인사건을 동영상파일로 본다는 것 자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정신이상자이기 때문에 스크린속에서 귀신이 나타나는건 기본이고 알수없는 검은 덩어리에게 쫓기기도 하며 사람을 죽이는 그 과정 전부를 생생히 보게 된다.
그 파일을 본 수사원들은 환상에 시달리고 식욕이 떨어지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자면 동영상 파일을 본다는 사실자체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게 된다.
죽은 사람의 뇌를 당사자의 허락없이 본다는것.
고인외에 아무도 모르던 개인적 비밀이 수사원들이 보는 공적인 장소에서 스크린으로 상영될때 주인공과 수사원들은 당혹한 눈길을 교환한다. 그러면 뭘하나? 이미 비밀은 비밀이 아닌 것인데.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가족들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이런 말을 한다.
" 너., 아버지 뇌도 볼꺼니? 꼭 봐야 하는거니? 니가 하는 일이 그거잖아..."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결국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쓴 일기장을 모두 소각장에 던져버리고 만다.
누군가의 사적인 기억을 들추어 본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기존의 시미즈님 작품이 환상적이면서도 불안한 미래와 과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랑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소재를 멀찍히 치워놓고(적어도 2권까지는) 인간 내부의 갈등과 심리표현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
스크린을 볼때마다 두려움과 안타까움 놀람과 후회 슬픔에 젖는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고 같이 고통스러워 하게 된다.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야 여러가지 아니 셀수없을 만큼 있겠지만 이 비밀 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이 흔히 가지는 감정이 아닌 극도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속에 인간이 느끼는 그 감정들.
-사실 이 작품의 제목 자체가 모순이다.
비밀? 고상한 비밀이든 저질스런 비밀이든 비밀이 갖는 그 응큼한 지위를 격하시키는 과정이 바로 이 만화의 줄거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