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절판


시인은 스물한 살에 죽고 혁명가와 로클롤 가수는 스물네 살에 죽는다. 우리는 더 이상 시인도 혁명가도 로큰롤 가수도 아니다. 술에 취한 채 전화 부스 안에서 웅크리고 자거나 얼이 빠지도록 술을 마시거나 새벽 네시에 도어스의 레코드 볼륨을 소리 높여 듣거나 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생명보험에도 들었고 호텔의 바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치과의사의 영수증도 잘 챙겨서 의료비 공제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스물여덟살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98쪽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오전에 나는 동료들로부터 회의 자료를 취합해 복사해서 붙여 넣고 각 자료의 폰트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회의에 들어가서 팀장님에게 지난주 매출과 이번 주 매출의 차이를 보고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한 가장 중대한 의사결정은 맑은고딕체와 휴먼명조체 중에서 맑은고딕체를 선택한 것이고, 가장 어려운 사고행위는 지난주 매출액 빼기 이번 주 매출액을 계산해낸 것이었다. 오후에는 전년도 세금계산서를 누락시킨 건으로 감사실에 불려가 꾸지람을 들었다.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오니 차장님께서 내가 혼나는 소리를 들었다며 업체에서 받은 마우스를 선물로 주셨다. 불쌍하다고.
그 마우스를 보고 있으려니 서러움이 밀려온다.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잔데. 커뮤니케이션 이론도 배웠고 실존주의도 사색했고 푸코도 들뢰즈도 읽었는데....이런 감정은 자기애 과잉이라고, 쪽팔리는 미성숙의 징표라고 이성적으로 분석해보지만 마음은 쉽사리 진정이 안된다.-164쪽

관리자나 사장님은 "노동의 고귀함"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이 정신 나간 메커니즘을 교묘히 주입시킨다. 그리고 저들은 여가를 즐기고 자아실현을 거듭한다. 노동자가 벌어 먹여줬기에 셰익스피어도 나오고 다윈도 나왔다. 노동계층에서 훌륭한 사람이 드물게 나온 건 그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며 사색할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산업혁명 이후 백오십년이나 지난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나도 대학교 때 토익 문제를 푸는 대신 사색을 하면서 어정거렸다면 다른 뭔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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