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 베를린의 미술과 미술 환경에 관한 에세이
조이한 글.사진 / 현암사 / 2010년 6월
품절


"저는 관광객인데 동상이 인상적이어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에른스트 텔만이라고 하는데 혹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장을 보러 가는 할머니는 살짝 망설이더니 친절하게 답을 해 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공산당 의장이었어요. ..."
할머니는 매우 기품 있고 지적으로 보였다.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는지 묻자 할머니는 저 아파트가 세워지자마자 들어와 살았으며 저 동상을 세우는 못브도 봤다고 한다. 조각가도 아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 한참 기억하려고 애쓰더니 전에는 기억했는데 갑자기 물으니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고 한다. ...할머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왠지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할머니는 몇 걸음 가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이곳을 찾아와 줘서 기쁘다"고 말한다. 지금은 사라진 국가에 불과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실패한 실험이지만 한때 자신들이 품었던 이상에 대해 자부심으 묻어나는 표정과 말투다. 혹시 저 할머니도 공산당원이었을까?-113쪽

독일이 분단된 동안 이 작품들은, 동베를린에서는 보데 박물관에, 서베를린에서는 달렘 박물관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여다 그 어느 쪽도 자기가 소장한 작품만으로는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들은 1949년부터 새로운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달렘에 보관한 작품만으로도 이미 좁아져 버린 박물관 면적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박물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그때 당시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그 언젠가 '통일이 되었을 때'다.
...서독 사람들이 가능하면 베를린 장벽 근처에, 박물관의 섬에서 가까운 장소에 문화광장을 세울 계획을 한 건 아마도 이를 의식해서일 게다. -144쪽

이쯤에서 유명한 두 예술가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잘나가는 사업은 가장 좋은 예술이다." 워홀이 한 얘기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이건 요셉 보이스가 한 말이다. 보이스의 말은 어떤 영역에서돈 인간이 타고난 창조력을 발휘하여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적으로 할 때 누구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업가가 주어진 상황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상품이나 판로를 개척하여 성공한다면 그것 또한 예술이라 본다. 상품을 회화나 조각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각 분야로 확장시켰다는 측면에서 보이스와 워홀은 그렇게 만날 수 있다.-272쪽

그녀가 환경부에 작품을 판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2000년 학교 졸업전에서 작품을 걸어 놓고 자리를 비웠는데 환경부에서 미술작품 컬렉션 담당자가 졸업전을 보고 작품 몇 개를 골라 장관에게 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팔린 그녀의 작품이 장관실에 걸려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3년 베를린에 계속 체류하기 위해 작가 비자가 필요하게 된 권미영은 경력을 증명하려고 그때 자기 그림을 직접 구입해간 사람을 찾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곳에 근무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화를 받은 환경부에서 권미영이라는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장관실에 걸린 그녀의 그림 때문이었다. 전화로 사정을 들은 그 사람은 비자 받는 데 필요한 편지를 써 주기로 약속했고, 며칠 후 장장 두 장의 편지가 환경부 장관 이름으로 배달되었다. 그 편지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얼마나 그 작품을 좋아하는지, 재능있는 외국 학생이 계속 이곳 베를린에서 작업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 편지 덕분에 그녀가 손쉽게 작가 비자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287쪽

더 흥미로운 일으 그 다음이다. 그해 겨울, 그녀는 고마은 마음에 자기가 직접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트리틴 장관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기대치 않게 고맙다는 답자잉 왔는데 편지 말미에 자기 작품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방문해도 된다고 했다. 긴가민가했지만 혹시나 해서 걸어 본 전화로 그녀는 약속 날짜와 시간을 받고 결국 장관실을 방문했다. 그녀는 알렉산더 플라츠에 자리한 사무실에 가서 트리틴 장관과 십오 분간 단독 면담을 하고 장관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방을 비워주기까지 했다. -287쪽

누군가의 말처럼 만약 사회가 썩을수록 훌륭한 예술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면 베를린은 오히려 그다지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가의 소망과는 달리 아무런 장애가 없는 곳에서는 예술혼도 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놀드 하우저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예술 작품은 일련의 목표 설정과 이에 대립되는 일련의 장애물과의 긴장에서 탄생하는 것이며 예술가는 그 모든 장애를 뜷고 창의력과 표현 의지, 형성 의지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게 된다."
작업을 지속하도록 도와주는 여러 조건도 예술 창작에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느끼는 어떤 결핍의 감정이다. 이런 결핍의 감정을 제대로 포착하고 표현할 때 비로소 예술가와 관객은 공감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을 통한 소통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외적 조건의 미비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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