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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50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동양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리, 뉴욕의 유명한 편집장이 이 책을 책장에 쌓아두고 세설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바로 손에 쥐어준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귀가 팔랑거려 구입한 책인데 읽고 나서 보니 동양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말엔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고(오만과 편견의 백미는 그 로맨틱한 줄거리를 써내리는 제인 오스틴의 시니컬한 시선과 툭툭 튀어나오는 독설들인데 이 책은 저자의 오사카 자매들과 간사이 지방에 대한 무한 애정을 기본으로 깔고 있으니 근본적으로 비교 불가능하다. 동양판 오만과 편견이란 평은 '아가씨들의 신랑감 찾기'라는 공통소재만으로 거칠게 두 작품을 묶은 것이기에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나로선 화가 날 따름이다) 그 뉴요커가 그렇게도 세설에 목을 맨 이유는 너무도 잘 이해가 되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후반부에는 한국인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서로의 은근한 신호를 받아 계산하고 파악하는 미묘함을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평한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세설은 바로 이런 미묘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의사소통으로 가득 차 있는 동양식 의사소통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직구 날리는 의사소통이 편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맞아 멍 든 가슴 한번쯤 가져본 서구인이라면 이 애둘러가는 동양식 대화의 매력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거기다 '일본'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기모노며 가부키며 스시가 그동안 쌓은 후광은 그 자체로 이 이야기를 1.5배쯤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줬을 것이다.
세설은 오사카의 몰락한 상류 계층의 네 자매 이야기이다.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은 바로 저 우아한 이중소통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캐릭터의 행위로 보자면 말 한마디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수많은 의도와 무수한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작가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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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편지가 온 다음 날 사진을 보내왔다. 사치코는 사진을 잘 받았다는 인사를 겸해 곧 답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작년에 이타니에게 몹시 재촉을 당한 것에 질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경솔하게 나서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친절한 마음은 감사하지만 답은 한두 달 기다려 달라며 대충 이런 말을 써 보냈다.
최근에 혼담이 잇었는데 바로 얼마 전에 깨졌기 때문에 동생의 마음을 생각하면 시간을 좀 둔 다음에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좋을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되도록 신중을 기해 조사도 충분히 하고 나서 부탁할 일이 있으면 부탁하겠다. 아시다시피 동생은 혼기가 한참 지났으므로 너무 자주 선을 보고 또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면 언니로서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사치코는 솔직한 마음을 썼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직접 찬찬히 알아보고 괜찮으면 큰집에 이야기를 하고, 그런 다음 유키코에게 알리자고 데이노스케와도 의논을 해두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다지 마음이 내킨 건 아니었다. 물론 알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고 재산 상태도 전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사진 뒷면에 쓰여 있는 것만을 봐도 세코시보다 조건이 훨씬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로 나이가 데이노스케보다 두 살이나 위라는 것, 둘째로 초혼이 아니라는 것, 전처 자식은 둘 다 죽었으므로 그거야 홀가분하지만 사치코의 생각에는 무엇보다 유키코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진 속 인물은 풍채가 아주 늙어 보였고 꾀죄죄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막상 실물이 나은 경우도 있지만 구혼을 위해 보내온 사진이 이렇다면 아마 이보다 더 늙어보였지 젊어 보일 리는 없을 터였다. 특별히 미남일 필요도 없고 실제 나이가 데이노스케보다 위라도 상관은 없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술잔을 나눌 때 신랑이 너무 늙어 보이면 유키코가 가엾기도 하고 애써 주선해 준 자신들도 자리를 함께 할 친척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역시 신랑다운 젊음이 무리라면 어딘가 발랄하고 윤기 있는 얼굴에 활기찬 느낌의 사람이었으면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자니 사치코는 아무래도 이 사진 속 인물에게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므로 당장 서둘러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일주일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문득 생각이 미친 것은, 일전에 <사진 재중>이라고 쓰인 우편물이 배달되었을 때 유키코가 힐끗 보고 알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잠자코 있는 것이 오히려 숨기는 것처럼 보여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치코는 유키코의 표정으로 보아 겉으로는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지만 역시 저번 일에 정신적으로 다소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연달아 다음 혼담을 꺼내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사진을 보내왔는데 사치코 언니는 왜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을까 하고, 애써 배려해준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지 못한 농간으로 받아들여도 곤란했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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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마음을 담는 일본 사람들만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잔잔한 일상에 잔물결이 퍼져나가듯 서술된다. 퍼져나가던 물결이 힘에 부쳐 가라앉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나 누군가의 마음을 어지럽히며 2권의 분량의 글을 이어간다. 거친 굴곡없이 저런 잔물결서술만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하니 이래서 이 책이 그리 유명한가보다 싶었다.
문학으로서 가지는 매력 외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1930년대 40년대 일본의 풍경과 생활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들이다. 한국에선 먹고살기 힘들어 괴롭던 시기이고(운수좋은 날) 먹을만하면 제정신으로 살수가 없었던 시기로 그려지는데(이상) 일본에게 이 시대는 빛나던 근대화의 시기이다. 누가 강탈하거나 핍박하지 않으니 기모노를 차려입고 얼굴에 분칠을 한 채 서구문명의 이기를 일상속에서 누리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쉽게 주사를 맞는 모습, 구체적으로 열거되는 서구 약의 이름 등) 그 모습들을 읽으며 일본이 그렇게 가까워보이면서도 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절절히 와닿는다. 시작에서부터 이렇게 달랐던 것이다. 당시 독일인, 러시아인들과 이웃으로서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2권으로 나누어진 이 긴 책에 밑줄긋기 할 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저 상세히 서술된 캐릭터들의 뒷마음 한구절 한구절 가슴에 와닿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정수이다. 전체로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