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절판


자네는 이런 고급 여관의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아무래도 요리가 아닐까요?
물론 요리도 요리지만 여기처럼 제대로 된 여관은 도착해서 돌아갈 때까지 '이건 아니다' 싶은 게 하나도 없는 법이라네.
아니다 싶은거요?
그래, 아주 사소한 것. 그러니까 차가 미지근하다든가 뭔가 서두른다든가. 대놓고 불평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신경쓰이는거, 그런 것이 전혀 없는게 이런 여관이네. 일류라고 평가받는 곳은 전통 여관이든 호텔이든 모두 다 그렇지. 그런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는 거라네-29쪽

"그럼 이제부터 내 생각을 얘기할 테니까 바보 같은 옂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아야코는 먼저 그렇게 못을 박았다. 순간적으로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을 참고 시케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지금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아"아야코가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시게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시게타는 좋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말야"
"하지만 중상위권은 되지않아?"
"그러니까 잠깐 내 얘기부터 들어줘"
"알았어 들을게 하지만 관계없는 얘기는..."
"관계가 있어. 나는 가고 싶은 대학이 있어. 물론 지금 성적으로는 어렵지. 그래서 요즘 좀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런데?"
"그러니까 앞으로 여름방학이 제일 중요한 시기잖아?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남자 친구와 놀러다니면 되겠어? 나 바보같은 여자지?"
다시 아야코가 얼굴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시게타는 어쩔수 없이 대답했다
"뭐 그다지 영리한 여자의 변명처럼 들리진 않네"
"변명이 아냐"
"요컨대 나하고는 사귀지 않겠다는 얘기지?"
"바로 그거야. 뭐랄까, 바로 그 점에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야. 시게타와 사귀고 싶어. 단지 지금은 사귀고 싶지 않다는 얘기야"-37쪽

"점점 더 바보 같은 여자가 되어가네"
"그렇지? 그래서 말하기 좀 그렇긴 한데"

처음에는 장난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야코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뭐랄까, 그 원하는 학교라는데 아야코를 꼭 보내고 싶어졌다.
"그럼 나와 안 사귀고 공부하면 꼭 그 대학에 합격할 수 있어?" 시게타가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아야코가 대답한다
"약속해. 약속해 주면 나와 안 사귀어도 돼"-38쪽

이듬해, 아야코는 원하는 학교에 멋지게 합격했다. 그런데 시게타는 이상하게도 아야코의 쾌거를 솔직히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자신은 이름도 모르는 전문대에나 가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야코에 대한 마음은 여전했고 이제 떳떳하게 애인이 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생겼다. 그러나 시게타는 "나를 바보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지는 마"라고 전제한 후 "내가 떳떳하게 너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래?"라고말해버렸다. 아야코는 당황하더니 시게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한 주제에 이별만큼은 확실하게 했다. -39쪽

고등학교 졸업한 후, 몇 년 만에 아야코와 재회한 곳은 시부야의 뒷골목이었다. ..은색 페라리가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좁은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시게타 아냐?"
페라리의 차 높이가 낮아서인지, 아야코가 신고 있던 하이힐이 높아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비탈길 밑에서 올려다봐서 인지, 차 옆에서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야코의 키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
...그때 '빵빵'하고 경적이 울리더니, 한 남자가 운전석에서 얼굴을 내밀고는 아야코를 불렀다.
"빨리 안가면 늦어!"
아야코는 돌아보지도 않고 시게타를 보며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 친구야?"
"말도 안돼 동아리 선배야"
"그래도 괜찮은 친구 같은데"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은?"
아야코가 얼굴을 더 찡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 주제에 페라리나 몰고 다니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거야. 대학생이면 같은 은색이라도 히비야선 전철을 타야 하는거 아냐?"
그렇게 말하며 웃는 아야코를 따라 시게타도 선선히 미소를 지었다. 하나도 안 변했네. -18쪽

행복한 순간만을 이어붙인다고 해서 행복한건 아냐-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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