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품절


아마 문제는 자신의 외모에 있을 터였다. 물론 그 남자들이 직접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생김새로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들은 느껴본 적도 없을 그런 쓸쓸함.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만큼도 남자들은 여자의 내면 따위는 돌아봐주지 않았다. -21쪽

"괴..굉장한 차네요"
다에코는 시트 끝을 움켜쥐고 기이치로 아버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바케트 시트에 푹 파묻힌 채 기이치로의 아버지는 품에서 궐련을 꺼내 불을 붙였다. 다시 아까 역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골풀 비슷한 냄새가 좁은 차안에 가득 찼다.
"응, 이거? 이 근방 농사꾼들은 죄다 밭에 나갈 때는 이 차를 타고 다니느만. 시골은 휑허니 넓어놔서 집에서 저 끄트머리 밭에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 이만큼 빠른 차가 아니면 밭에 가기도 전에 해가 떨어져 버린다니께."
자갈을 말아 들인 타이어에서 작은 돌이 튕기는 소리가 자동차 바닥에 크게 울려 퍼졌다. 옆 눈으로 속도계를 바라보니 바늘이 210km를 가르키고 있었다.
"아...아버님...이건 뭐라고 하는 차예요? 속도가 굉장하네요"
"아아 이거? 람보르기니라고 하는 차라더만, 모를꺼여. 도쿄 사람은. 시골 사람들만 타는 차니께. 요즘 세상에 이런 차는 한물갔지 뭐"-13쪽

그러시겠죠. 도회지 분들은 시골 농가에 대해 오해하는 게 많아요. 이건 미리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인데 이곳에는 무엇이든 다 있어요. 말씀하셨듯이 아름다운 자연도 있죠. 그리고 우리 집에는 돈도 있습니다. 사들이지 못할 건 하나도 없어요. 건방진 소리겠지만 도쿄의 부르주아라고 하는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돈은 많아요. 하지만 유일하게 없는 것이 신부예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신부도 돈으로 살 수는 있죠. 우리 쪽의 경제력을 다 보여주고 느긋하게 시골 생활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면 얼마든지 상대는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말에 솔깃해서 따라나서는 그런 여자들은 안됩니다. 그런 여자는 지금까지 남자들에게 응석을 부리며 자유롭게 연애를 즐겨운 여자들이에요. 콤플렉스로 성격이 비뚤어지는 일도 없었고 그저 거침없이 웃으며 성장해온 여자들. 결혼을 계기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해보겠다, 우아하고 따스한 가정을 만들겠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는 흔해빠지고 따분한 여자들이죠

어이없다는 얼굴로 기이치로는 말했다.

그게 왜 나쁘죠? 저는 그런 여자들이 부러운데요...

-28쪽

농가의 신부답지 않기 때문이에요. 농가의 신부다운 깊이가 없어요. 비애가 없어요. 농가에서는 무엇보다 양식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부유해도 농가다운 양식미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처럼, 어디서 보건 한 조각 틀림도 없이 농가의 여자다운 그 아름다움. 나는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 여자를 아름답다고 느껴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만큼 지쳐버린 등허리. 굴절과 자학이 꽃으로 피어난 듯 딱딱하게 웃는 얼굴. 행복을 남의 반절도 맛본 적이 없는 그런 풍정. 나는 그런 매력을 가진 여자와 살고 싶어요.

조그맣게 벌레 소리가 났다. 다에코는 눈을 내리뜨고 테이블의 나이테를 응시한 채였다.

다에코 씨, 저와 결혼해주지 않겠습니까?-28쪽

인생이란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채색하기 위해,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아아 좋은 한 평생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식품 같은 추억과 물질, 그런 것들에 둘러싸이기 위해 보내는 작업인 것이다.-47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룩말 2007-11-09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보르기니 얘기 좀 웃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