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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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언제나 현관문이 닫혀 있는 집이었다. 현관문은 사생활을 중시할 만큼 교육받은 사람들과 문을 반쯤 열어놓고 사는 무식쟁이들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이었다. - P19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 P44

엄마는 거들을 입고, 낡은 회색 정장을 걸치고, 검은색 스웨이드 통굽 구두를 신고, 얼굴에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른 다음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있는 직업상담소를 찾아가 작은 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직했고 일주일에 28달러를 벌었다. 그 이후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고 우리 먹일 끼닛거리 목록을 돈과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네 블록을 걸어 지하철역에 가서 타임지를 한 부 사들고 지하철에서 읽으며 42번가에 도착해 회사 건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그날 업무를 마친 다음 다섯 시에 퇴근해 아파트 문으로 들어와 부엌 긴 의자에 털썩 앉아 저녁을 먹고 바로 소파로, 따스한 목욕물처럼 당신을 반겨주는 우울함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날 저녁의 우울, 마지못해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처럼. - P116

이 시대의 심리상담문화가 전수하는 쉽고 허망한 위로가 아니라 브롱크스식 기준을 아는 사람의 가차 없는 평가를 원할 때는 메릴린에게 전화한다. 그의 언어에 완곡어법이란 없다. 명치를 한 방 얻어맞는 듯한 냉철한 분석과 조언을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 P188

나는 사랑의 경험이란 이전과 비슷하지만 점점 더 실망스러워지는 것, 그러면서도 동일한 열병과 환멸과 격정과 부정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배워야만 하는 저주를 받은 현대 여성이다. - P190

한 여성 운동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스타 아니면 그루피(팬)예요." 그가 볼 때 그루피란 평범하게 성공한 남성의 궤도 안에 머물다가 결혼해서 그 상태를 유지하는 여자들이다. 스타란, 나머지 우리다. 할당된 운명을 흔들고 걷어차버리는 사람들, 적절한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을 저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 - P201

한 번은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여성 잡지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 최악이 캐서롤을 만들었다. 그걸 둘이서 10분 만에 대강 먹어치웠고, 난장판이 된 부엌을 한 시간 동안 치운 건 나였다. 싱크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 순간을 기억한다. 앞으로 40년을 이렇게 살아야 되는건가? - P215

신혼 초반부터 자잘한 싸움으로 점점 나빠졌던 부부 사이는 결혼 내내 한 번도 시원하게 좋아지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그 상태에 우리를 적응시켰을 뿐이다. - P232

그의 몸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야.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이 감각이지.‘ - P259

한 번씩 한밤중에 깨어나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나는 큰 소리로 묻는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한다. "엄마가 첼시에 있어. 매릴린도 73번가에 있고, 오빠는 볼티모어에 있잖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헤아려보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줄 아느냐고 말했다. - P265

성적인 끌림이라는 것에는 확실히 장점이 많아서 저울질을 해보면 늘 무게가 더 나갔다. 우선, 성애 자체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욕망은 다정함을 보장한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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