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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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우리 영감 걷어차서 밖으로 내쫓아버릴까 싶어."

여장부도 중년이었다.

"그래도, 허세쟁이 술고래이긴 하지만 그 사람은 말이지, 인간은 저마다 외로운 존재라는 걸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난 같이 살 수가 없거든." - P25

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고 만다. 고독이 느껴지지 않는 뒷모습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 P26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어째서일까요."

"나도 사니까요."

"아, 홀아비세요?"

"여자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려요. 뭘 사러 갈 때도 있지만 비가 오면 절대로 안 나가거든요.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는 수밖에."

"사귄지 얼마 안 됐구나."

"벌써 육 년짼데."

"어디가 아파요?"

"아무 데도 안 아파요."

"일해요?"

"안 해요."

"그럼 하루 종일 뭐 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 결혼하고 싶은데 싫다네.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연상이에요."

"괜찮잖아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서른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였거든."

"육 년 동안 같이 살았댔죠? 그럼 나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그개, 요전에 몰래 결혼하려고 알아봤더니 열여덟 살 속였더라고요." - P70

"우와, 열여덟 살이나."

"결혼하기 싫다는 건 나이를 들키기 때문이 아닐까요.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 P70

지난번에 친구의 아들이 그 친구를 데려왔다. 스물한 살 젊은이들이었다. 나도 자식을 곧바로 낳았다면 이만큼 컷을까 하며, 지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청결한 것 같기도 한 젊음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들에게 밥을 먹였고 술을 권했고 그들은 다 큰 남자인 척하며 담배를 물었다. - P102

"돌아가신 지 몇 년 됐어요?"

"사십 년. 사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지로 씨를 잊은 적이 없어. 그렇잖아, 진절머리가 나서 떠올리기도 싫은 남자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떠올려도 싫은 일 뿐이잖아. 난 떠올려도 싫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 재혼하자는 말을 다른 남자한테서 몇 번이나 들었지. 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보면 금방 아아, 싫다, 싫어, 지로 씨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는 걸."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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