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3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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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느 순간이고 욕먹을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기 검열은 자기 연민보다 훨씬 쉬운 자동 반사 같은 일이었다. - P63

시인은 노인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의외로 죽어가는 자들을 상대하는 일에 적성이 있음을 깨달았고 - P70

윤미는 이제 할머니구나.

...

이제 겨우 아줌마에 무감해졌건만.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더니. 숙희는 삶이 제공하는 이 끝없는 개념적 공격에 좀 억울하고 피곤한 마음이 들었다. 인류의 반이 필히 경험하는 것인데도 왜 이토록 힘겹고 외로운 싸움으로 느껴지는 것인지. 두 달 전 마흔아홉 살이 된 숙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줌마‘라는 단어와 치열한 내적, 외적 다툼을 벌여오다가 이제 겨우 ‘정착‘이랄까 ‘평화‘랄까 그 비슷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우연찮게 면전에서 아줌마라 불리더라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말은 쉽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 P117

칠십대면 칠십대 여성이라 하고, 팔십대면 그냥 팔십대 여성이라 지칭하면 될 것이지, 그도 아니면 서양식으로 이름을 부르든가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아무에게나 할머니라고 대충 불리고 싶진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숙희 어린이‘와 비슷한 어감으로 ‘숙희 할머니‘하고 자신을 부르며 제멋대로 친근한 척 이래라저래라 선을 넘어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웠다. - P126

그는 보고 있기 즐거운 남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살이 조금 찐 듯했지만 찬영은 여전히 젊은이의 몸을 갖고 있었다. 숙희는 문지방에 서서 상체를 반쯤 벽에 기댄 채 찬영의 몸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아름답다 느꼈던 많은 것들이 그것을 붙잡는 순간 곤란함이 되어 곁에 남았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예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딸린다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상상만 해도 싫었지만, 젊은 남자들이 점점 더 어린애처럼 보이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뭐가 되었든 무언가에서 또다시 멀어지고 있다는 이 생생한 느낌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모든 것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 생경함. 그것만큼은 새롭다고 숙희는 자조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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