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자가 ‘모른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본다. 독자는 작가보다 많이 안다. 단지 집중하지 않을 뿐이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당신이 하는 말에 아무 관심이 없으며, 그래서 집중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이해하도록 쓰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 - P19
얼마 전 지브리 스튜디오 프로듀서가 쓴 콘텐츠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다. 저자는 지브리에 입사한 뒤 회사에서 ‘정보량을 조절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다. 정보량이 많으면 사람들이 여러 번 다시 찾는 작품이 되는데, 대신 어려워져서 아이들이 보기 힘든 작품이 되므로 정보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그런데 정보량이 뭡니까?"하고 묻자, 다른 프로듀서가 "그림의 정보량이란 선의 수입니다."하고 간명하게 답한다. 말하자면 그림에 선의 수가 많으면 정보량이 많아진다. - P21
인간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수는 극히 적으며, 수월하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는 1-2개로 보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어려움의 관건은 정보의 내용보다 수라는 가설은 매우 그럴듯하다. - P21
제 글을 쓰면서도, 다른 분들 글 읽는 심사 하면서도 뼈저리게 생각했던 게 있어요. 요즘처럼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굳이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은, 작가보다 몇 수 위예요. 작가로서 제가 알고 있는 걸 독자들은 이미 다 간파하고 있죠. 트릭, 기법, 반전이랍시고 집어넣는 것들, 모두 다, 그래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거나, 상상력을 뛰어넘겠다거나, 머리싸움에서 이기겠다는...그런 야심은 좀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욕심을 가진 글은 너무 뻔히 의도가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실현도 불가능해요.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그 분이 저보다 이야기의 트릭을 잘 알고, 백 배 천 배 똑똑해요. 게다가 작가가 글을 아무리 잘 써도 화려한 시각효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이길 순 없죠. 그러니 베스트셀러의 꿈도 버리시는 게 현명하겠지요. 그런 시대예요. -황보라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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