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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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가 시간을 들인 노력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건 '문장'이라는 말을 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그의 초기작과 최근작을 비교하며 뜻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초기작은 문장이 너무 감성적이거나 관념적이라 독자 입장에선 읽다보면 덜그덕거리는 부분이 있고 최근작은 내용이 어떻든지 문장이 쉽고 간단하고 명료해서, 그리고 그 흐름이 유려해서 별다른 노력없이 스르륵 빠져들게 된다. 문장이 아름답고 심오한 뜻을 담는것과는 다른 차원의 퀄리티인건데, 어떻게 보면 이게 이루어져야 독자가 몰입을 할 수 있는거니 무척 중요한 자질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금희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으며 바로 그 문장의 힘을 느꼈다. 요즘 한국 작가들도 잘 쓴다지만, 조선족 작가가 격변하는 중국을 살며 써낸 글이라 그런지 문장이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변동 두 축을 오가며 능수능란하게 펼쳐지고 도도하게 흐르는 기개가 있달까. 이는 중국작가들이 가진 개성인거 같기도 한데(사회상이 소설의 주제로 편입되는) 금희 작가는 조선족 작가로서 한글로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옛 한글소설을 읽는 듯한 글맛.입맛이 살아있는 문장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다. 조선족들이 이렇게 한국말을 잘 쓴단 말인가? 그리고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한국책은 거의 보지 못하고 1930년대 등 옛 한국문학만 읽었다 하는데 어찌 이렇게 완성도 있는 소설을 써낼 수 있는 것인가 경이로움까지 들었다. 경단편이라 단편인듯 중편인듯 경계가 모호한 소설인데 그 분량 내에서 주제의식과 디테일을 모두 잡아내고 있고 요즘의 한국문학이 가진 문학성이란게 무엇일까, 아쉬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조선족 문학이라는 영역, 요즘의 어린 세대는 조선족이라도 한국말을 못하기에 이제 조선족 문학은 사라질 것이며 그렇기에 금희 작가 역시 지면을 얻기 어려워도 그냥 쓴다는 후일담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들이 한국에서 보다 사랑을 받고 작가에게도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길. 한국문화가 힘을 얻은 만큼 이런 주변부에 대해서도 더 신경을 쓰고 지원하는 책임감도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응원하고 주변에 많이 권하고, 금희 작가의 후속작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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