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콜더는 공중에 떠 있거나 작은 모터로 움직이는 추상적인 유기적 형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움직이는 조각들은 콜더 특유의 이중적인 삶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조각가로서의 삶과 기술자로서의 삶이었다. 그가 완전히 독창적인 미술 형식을 창안했다는 것이 곧 명백해졌고, 뒤샹은 이 새로운 작품들에 프랑스어로 모빌mobi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어에도 그 단어가 있긴 하지만, 그 뒤로 죽 그 단어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후에 만들기 시작한 움직이지 않는 작품들에는 장 아르프가 스타빌stabile이라는 이름을 부였다. - P105

유년기에 겪은 역경과 고통은 그를 나약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게 만든 듯했다. 그는 수수께끼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젊은이가 되었고, 이제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무기로 세상과 대면할 준비를 했다. 그는 성을 고르키로 바꾸었다. 쓴맛이 나는 것,이라는뜻이었다. 그리고 이름은 아실이라고 지었는데,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부노한 아킬레스의 이름을 땄다. 그는 유명한 러시아 작가 막심 그리키의 사촌인 척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막심 고리키 자체도 필명이었기에 몇몇 평론가들이 당연히 눈치를 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문화적 인격을 창조하고 뉴욕의 한 미술 학교에서 교사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 P221

유년기 경험이 남긴 심리적 외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였기에 그 관계는 언제나 좋지 않게 끝났다. 정신에 흉터가 너무 많아서 정상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 P221

메레트 오펜하임

자신의 삶에 먹구름이 드리워지자 그녀는 창작 활동을 전혀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 기간은 195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이어졌다. 그녀는 숨 막히는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때때로 그녀는 새로운 미술 작품을 만들고자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었기에 만든 것들을 거의 다 부숴 버렸다. 그러다가 우울증이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우울한 기분이 걷혔다. 그녀는 다시 활발하게 창의적인 작품 활돋을 즐길 수 있었고, 30년 동안 지속하게 된다. 스위스에서 지낸 이 우울한 시기에 그녀는 남편을 얻기로 결심한다. 1949년, 그녀는 볼프강 라로슈와 결혼했다. "내 결혼 생활은 치유 경험이었다. 당시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고, 심지어 길을 건너는 법조차도 몰랐다. 그런 나를 남편이 든든히 받쳐 주었다." - P326

파블로 피카소

그는 역사상 가장 다작을 한 미술가에 속하며, 미친 듯이 일하면서 하루에 최대 열네 점의 유화를 그리기까지 했다.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글로 일기를 쓰지만, 자신의 일기는 미술이라고 했다. 낮에 무엇에 몰두했든 간에 결국은 캔버스에 담기곤 했다. 식사, 애완동물, 음악, 친구, 무엇보다도 연인이 그랬다. - P358

피카소는 훗날 아주 유명해졌을 때, 파리에서 고군분투하던 젊은 화가 시절에 썼던 화실을 보러 간 적이 이 있었다. 그런데 화실 바깥의 벤치에 늙은 노숙자가 자고 있었다. 피카소는 그가 그 초창기에 알았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남자는 불황에 망했다고 설명했다. 피카소는 쓰레기통으로 가서 구겨진 종이를 하나 찾아서 거기에 아름다운 스케치를 했다. 거기에 서명을 한 뒤 노숙자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이걸로 집을 사세요." - P3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