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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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를 읽고 생각이 나서 이 책을 재독하였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사서 한 번 읽기는 했었는데 당시에는 발상이니 작법이니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기에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깊은 땅 속의 것을 채굴해내는 것에 비유할 때에도 그런건가(별로 이해하지 못함) 소설가는 작업의 속도가 아주 느리기 때문에 빠른 결론이나 효율성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말에도 그런건가(전혀 이해하지 못함) 이 정도의 독해력이었고 그저 하루키의 이야기를 하루키의 편안한 문장으로 읽어 나가는 재미만 즐겼던 듯 하다.


최근에 스티븐 킹이나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예전보다는 이해하는 범위가 커진것 같고, 마루야마 겐지의 작법에 관한 철학이 너무 비장하다 느꼈던지라 하루키는 쉽게 이야기 했던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하고 찾아봤는데. 와우 이 책은 사실 양의 탈을 쓴 범 같은 책이었다. 내가 단지 하루키의 말을 잘 못알아 들으니 양이라고 착각했을 뿐.


하루키나 마루야마 겐지나 일맥상통 하는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사교모임이나 출판계 인맥 같은 것에 연연하지 마라, 적당한 운동으로 신체 능력을 단련하라 등등. 하지만 두 작가가 명백히 다른 방향의 조언을 한 부분도 있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손으로 원고를 쓰고 그걸 다시 손으로 옮겨 적으며 7회 이상의 퇴고를 하라는 극기에 가까운 글쓰기를 제안하는데 하루키는 그냥 워드로 쓰고 고치고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말라고 한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올라야 하고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쓰지 않을 자유가 작가가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두 작가의 가장 큰 차이는 야망의 크기와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 같단 생각을 했다.


마루야마 겐지가 이야기하는 작가는 대부분 일본의 작가들이고 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가 바라보는 출판 시장도 일본으로 한정된다는 느낌인데 하루키가 바라보는 것은 세계시장이다. 하루키가 잘 되었으니 그런 것이라 결과론적으로 보기에는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본인이 바라는 바가 명확했고 뉴욕시장으로 진출할 때에는 에이전트나 번역가 선정에도 공을 들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꽤 열심히 움직인 부분을 책에서 상세히 서술한다. 작가이지만 동시에 비지니스맨으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문장은 심플하지만 그의 크고 큰 야망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야망이란 단어는 꺼내지도 않으면서 아주 편안한 문장으로, 그냥 에세이를 읽는 느낌으로 몇백쪽을 읽어나가게 하는 하루키의 필력도 아주 대단하다. 


하루키가 말하길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쓰고 싶은 글의 모습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것이 북극성처럼 떠 있어서 자신은 그걸 따라가기만 했다 하는데 이건 사람의 인생에 대한 비유 같기도 했다. 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인생은 바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인생보다 훨씬 수월하고 더 멀리 갈 수도 있다는. 재독을 하며 숨겨진 진가를 발견한 아주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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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4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었을 때 앞에 보지 못했던 부분 또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죠. ^^
하루키니까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고 싶지 않을 때 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재능이든 경제력이든 뭐든 말이죠. ㅎㅎ

LAYLA 2021-08-14 22: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 쓰지 않을 땐 번역하고 에세이 쓴다는데...ㅎㅎㅎ 저렇게 능력도 있고 야망도 있으면서 관종은 아니라는 부분이 저는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음 나름의 하루키만의 방식으로 관종일 순 있겠다 싶긴 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