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감탄으로 시작했다. 내용이 명료하고 문장도 시원시원해서 읽는 재미와 맛이 있다. 뒤로 갈수록 웃음이 나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말로 치면 뼈를 때리고 듣는 사람을 순살로 만들어 버리는 문장들이 웃겼다. 그리고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가면서는 작가가 좀 안타깝고 감히, 내가 그를 얕보고 비웃게 되는 지점도 생겨났는데 이는 작가가 너무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상적 문장으로 명성을 얻은 소설가를 욕하고 젊어서 죽어 과한 후광을 얻게된 소설가를 욕하고 소설에 집중하지 않고 에세이를 쓰거나 방송을 하며 셀럽으로 사는 소설가를 욕하고... 


한 마디로 자기 빼고는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모든 작가들을 모두까기 하고 있는데, 문예지나 출판업계에 대한 비판은 고개가 끄덕여이는 지점이 있었지만(작가의 실력이 아니라 연차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하는 관행, 작품의 수준이 미달하여도 문예지 분량에 맞추어 끼워넣기 식으로 출판하는 안일함 등) 그의 그런 과한 비장함이 결과론적으론 좀 우습게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쓴 소설이 그가 욕하는 소설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출판된 그의 책의 권수나 판매량을 봐도, 그 역시 그가 그리 욕하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팔리는 작가이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에세이보다 소설이 더 뛰어나고, 단지 그걸 알아보는 독자가 적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높은 소설가의 기준을 세우듯이 이 세상엔 뛰어나고 좋은 독자들도 많고 그것이 드러나는 건 결국 판매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재능이 있음에도 뜨지 못하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나, 마루야마 겐지 정도로 유명한데도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팔린다는 건 결국 그의 소설이 에세이보다 별로란 뜻 아닌지. 그리고 그의 소설이 (그 스스로의 믿음보다 독자들의 눈에) 구린 건 바로 저런 비대한 에고와 비장함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문장을 비장하게 적어놓아서 몇 문장만 읽어도 느끼하고 느끼하다... 원고를 컴퓨터로 쓰지 말고 원고지에 쓰고 그걸 또 종이에 손으로 7-8번씩 옮기며 퇴고를 하고 등등 요즘 시대에 도대체 이게 무슨 기행인가 싶은 방법들을 권유하는데 그래서 나온게 그런 문장들이라면 그는 차라리 글을 쓰는 데 들어가는 과도한 정신적 에너지를 좀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고 싶은 누군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이 한 번은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은 한다.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 작가의 시각은 과하지 않은 수준까지는 꽤 괜찮기 때문이다. 제발, 진짜 소설가가 너무 되고 싶은 어린 사람들은 좀 읽지 않았으면 싶기는 하다. 읽고 진짜 이렇게 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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