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괄량이에다가 성격도 밝지만, 진짜로 그런 건 아니야. 진짜로 밝은 사람은 잠자코 있을 때에도 밝아. 하지만 너는, 조용히 있으면 나까지 쓸쓸해져 - P24
아아, 인류여, 남자여, 여자여, 어쩌면 이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가. 나는 타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 때문에 멍해지고 만다.
생활이란 종잡을 수 없는 것이거늘, 그 종잡을 수 없는 것 속에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잣대로 자신을 재면서 거의 대부분 병처럼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려고 한다. 남이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한다. - P70
어렸을 때, 영화를 볼 때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인간의 인생은 너무 부당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 P132
"그게 참, 2년이란 참 긴 시간이야. 낮 동안은 좋아. 일을 해야 하니까. 이때도 열심히 일한 녀석일수록 빨리 죽었어. 먹을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일하는 척만 해야지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돼는 거야." "인텔리가 약하다든가 하지는 않고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적당히 아무렇게나 하는 녀석일수록 살아 남았어. 낮 동안은 좋아. 근데 밤이 길어." - P141
오늘은 친구가 왔는데 아주 복잡한 얼굴을 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채ㄹ 쓰던 남편이 증발한 후 길에서 헤매게 된 모자 가정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서 내보냈다고 한다. 그걸 본 아들이 "우리 집이 저렇게 되면 나 학교 그만두고 일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카네는 학교 보내고 싶으니까." 라고 말했다고. 일 년 내내 원숭이처럼 싸움만 하는 남매인데도 하면서, 친구는 뭉클해서 자신의 성공한 육아에 대해 황홀해 했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서 딸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했더니, 딸은 스파게티와 과일 파르페를 다 먹어 치우고는 더없이 만족한 얼굴로 "있지, 엄마, 오빠랑 밥 먹을 때 나보다 비싼 거 사 주면 안 돼"하고 히죽 웃었다고.
"흐음. 남자가 더 착해!" 글쎄, 나는 그 동생이 특별히 더 뻔뻔하고 못됐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냥 무척 여자답구나 하고 생각한다. - P182
포도주가 떨어지자 나와 도모는 손을 잡고 술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도무는 불쑥 "이게 인생이야"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또 주스 마시듯 포도주를 마셨다. - P248
언니, 언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운전할 줄 알고 책 좋아하는 여자는 전부 이혼했어, 내가 아는 범위 안이긴 하지만. - P289
여자가 한 번 어머니가 되어 버리면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남자는 아버지가 되어도 아버지 이외의 것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여자라 남자의 그런 재주가 신기하다. 세상에서는 무책임하게 어머니도 인간이며 여자라고 꼬드기지만, 아무리 꼬드김을 당해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이기를 계속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책을 읽으면 객관적 입장이라는 것은 사라진다. 탈옥수의 수기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손에 땀을 쥘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기 위해 읽는 거다. 그러나 도중에 문득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탈옥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중간에 성장 과정이 나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살 때의 사랑스러운 사진이라도 한 장 삽입되어 있으면 손에 땀 같은 건 안 나온다. 우리 아이는 내가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 건가? 하고 점검하게 되어 피곤하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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