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쏜살 문고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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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자의 기본 패션이 셔츠란 걸 아는 일본인은 적다. 일본 남성 패션 잡지서도 그런 기사를 다룬 적이 없고, 패션 평론가가 텔레비전에서 그런 얘길 한 적도 없고, 일본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사람이 그런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없다. 이탈리아에서 셔츠에 눈을 뜬 뒤로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마 일본인의 주식이 쌀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외국 사람에게 우리 주식은 쌀입니다. 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주식이 쌀이란 걸 외국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 P17

나는 일로 도내 호텔에서 2박 할 때도 셔츠를 예닐곱 장은 가져간다. 어차피 다 입지도 못하잖아, 하는 친구의 조언도 무시한다. 내게 셔츠는 ‘입어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입고 즐기는‘것이어서, ‘고른다‘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 물론 귀찮은 일일지 모른다. 귀찮은가 안 귀찮은가는 내게 거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소설을 쓰는 몹시 귀찮은 일을 하는 주제에 정말 웃기다고 생각하지만,나도 어쩔 수 없다. - P30

나는 시가 커터와 케이스를 종종 산다. 작년에 밀라노에서 이건 신제품이라며 점원이 원형의 아름다운 커터를 보여 주었다. 상당히 고가였지만, 점원이 "어제 베를루스코니의 비서가 이것과 똑같은 것을 사 갔다."고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AC 밀란의 구단주이자 현재 이탈리아의 총리다. AC 밀란은 좋아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태도는 별로다. 그렇게 말했더니 점원은 빙그레 웃으며 "밀란에서 누구 팬이냐?"라고 물었다. 나는 루이 코스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점원은 "어제 루이 코스타가 와서 이것과 똑같은 것을 샀다"고 했다. 이탈리아인은 어째서 이렇게 능청스러울까 생각하면서 나는 결국 영업 술수에 넘어가 커터를 사 버렸다.

- P32

그 후 일본에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외국 뉴스를 보는데 베를루스코니가 정말로 내가 산 것과 똑같은 커터를 사용했다. 루이 코스타가 있는 팀의 구단주이니 괜찮아, 하고 나는 그 커터를 애용하게 됐다. 아마 루이 코스타가 커터를 샀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이탈리아 남자의 거짓말은 인생을 즐겁게 해 준다. 죄가 없다. - P32

...그것이 내가 번 돈으로 산 첫 ‘큰 쇼핑‘이었다. 하지만 내가 번 돈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ㅆ다. 책이 잘 팔려서 큰돈이 들어온 것은 그때까지 몇 번 경험했던,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과는 분명 질이 달랐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일주일 만에 쓴 작품이었다. 습작 노트는 있었지만, 실제로 원고지에 쓴 것은 처음이라 문자 그대로 먹고 자는 일을 잊고 완성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고생은 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작품이 이 세상에 존재한 듯 홍수처럼 말이 쏟아져서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썼다. - P130

그런 작품이 상품화되어 시장에 나가 이익을 낳고 저작권 인세로 은행 계좌로 돈이 들오고, 그 일부를 찾아 엄청나게 큰 스피커를 산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강하게 자각한 것이 있다. ‘큰돈이 들어왔으니 이제 자유로워졌구나‘ 쇼핑이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이유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서만은 안디ㅏ. 갖고 싶은 것을 고르고 사는 행위는 자본주의적인 자유의 상징이다. - P130

당시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인이 브랜드를 몰라서 명품에 대한 흥미가 덜했다. 수상한 부자 아저씨ㄹ이 베르사체나 발렌티노를 입게 된 것 역시 버블 이후다. 버블은 경제 토픽뿐 아니라 패션 문화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된 나라에 패션 브랜드 기업은 그 옛날 칭기즈 칸처럼 봇물 터지듯 덮쳐 왔다. - P136

한번은 게를 먹고 택시를 탔더니 "손님, 게 먹고 왔군요."하고 운전사가 말했다. 손은 씻었지만 손톱 사이에 게 냄새가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운전사는 내가 게 먹은 것을 나무라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샘내는 것도 아닌 담담한 느낌으로 "게를 먹었군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또 저질렀군요."하고 신이 말하는 듯한, 배덕하여 금지된 놀이를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 P153

어떤 위기 상황에도 쿠바 사람들은 노래와 춤과 그리고 시가와 술만은 놓지 않았다. "파티에 가도 먹을 게 없네, 그런 파티는 불을 붙여서 태워 버려." 하는 노래가 대히트하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그 시절 쿠바는 대단한 위기였지, 하고 어느 날 친구인 뮤지션에게 말했더니, 그게 언제야? 하고 되물었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잖아, 했더니, 좀 그랬나,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우리나라는 혁명 이후 위기의 연속이어서 위기라 해도 그게 언제 때 위기인지 몰라."라고 했다. - P158

마우이는 관광지지만, 내가 콘도를 갖고 있는 카파루아는 장기 체재형 별장지라 거주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 미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여름인 이 섬에서 스포츠와 독서 외에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풀 사이드에 누워 느릿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우이를 찾는 것이다. 같은 콜프 팀인 남성에게 인터넷 환경이 나쁜데, 당신 집에는 인터넷 회선을 넣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넣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인터넷을 하고 싶지 않고 메일도 확인하지 않으니까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미네소타에서 인터넷 광고 회사로 성공해서 이곳에 별장을 산 것 같은데, 마우이에서는 인터넷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아날로그로 보내고 싶다며 웃었다. - P160

2006년 독일 월드컵 관전도 N군과 함께했다. 프랑르트에서 는 또 휴고 보스를 중심으로 쇼핑을 했지만, N군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의 명품 거리는 아주 소규모에 소심하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낳고 질실강건이 자랑인 독일에서는 이렇게 사치스럽고 비싼 물건을 팔아서 미안합니다, 하는 분위기가 가게 안에 가득하다. 그래서 "네가 부자라면 이런 것쯤 갖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하고 강요하는 듯한 태도의 점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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