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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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에 관한 건 대개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배웠어요. 챈들러는 그야말로 비유의 천재니까요. 가끔 아니다 싶을 때도 있지만, 좋은 건 말도 안 되게 좋죠. 비유란 의미성을 부각하기 위한 낙차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낙차의 폭을 혼자 어느 정도 감각적으로 설정하고 나면, 여기에 이게 있으니 여기서부터 낙차를 역산하면 대략 이쯤이다 하는 걸 눈대중으로 알 수 있어요. 역산하는 게 요령입니다. 여기서 쿵하고 적절한 낙차를 두면 독자는 눈이 확 뜨이겠지, 하는 식으로요. 독자를 졸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슬슬 깨워야겠다 싶을 때 적장한 비유를 가져오는 거죠. 문장에는 그런 서프라이즈가 필요해요. - P1

위대한 개츠비는 기본적으로 1인칭 소설입니다. 챈들러의 작품도 1인칭 소설이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1인칭 소설. 저는 원래 1인칭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다들 어느 시점에서 1인칭을 버리죠. 챈들러는 예외지만, 그건 시리즈물이라 도중에 스타일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작가가 점점 3인칭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건 이야기가 진화해서 복합화, 중층화하는 과정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 P2

(리얼리티가 없을까봐 정보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쓰는 등 신경을 쓰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지죠. 리듬이 죽어버리니까요. 늘 하는 말이지만,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 P3

나는 지상에 있는 자아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이를테면 저는 사소설 작가들이 쓰는, 일상적인 자아의 갈등 같은 것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그런 부분도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요. 물론 저 역시 무슨 일이 있으면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불쾌함을 느끼거나, 고민하거나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 P4

장편은 아무래도 장기전이다보니 잘되는 날과 별로 수확이 없는 날의 반복인데, 그래도 길게 잡고 돌아보면 결국에는 확실히 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요는 스스로를 믿는 일이죠. 소설을 쓴다기보다, 부엌에서 굴튀김을 하나하나 튀기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요. - P5

데뷔 당시 문단에서 제일 싫었던 게 일종의 테마주의였어요. 이런 주제를 다뤘으니 이건 순문학이다, 깊이가 있다, 그런 말이 제일 싫었죠. 그래서 소재나 주제를 전부 걷어내고, 그럼에도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 P6

작가가 되려면 자신이 이거다 하고 정한 대상과 전면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 그 코미트먼트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코미트먼트의 방향성이나 내용응 ㄴ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깊이는 꼭 필요해요. 깊이가 없으면, 나아가 그 깊이를 끝까지 짊어질 담력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어요. 나머지는 운입니다. 전 아마도 운이 좋았던 거라 생각해요. - P7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면 아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을 써볼까, 하죠.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첫 문장도 그랬어요. 쓴 뒤에는 반년이든 일 년이든 묵혀두면서 가끔 꺼내서 고치고, 조금씩 갈고 닦아서, 그게 내 안에 제대로 남는지 아닌지 기다립니다. 찰흙 덩어리를 벽에 던져서 달라붙는지 떨어지는지 확인하듯이, 물론 깨끗이 떨어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 P8

장편소설은 하나의 테마로는 절대 쓰지 못해요. 몇 가지 테마가 복합적으로 얽혀야 비로소 만들어지죠. 길면 길수록 그 요소가 많아야 하고요. 저의 출발점에는 최소 세 가지가 있었고, 세 가지가 있으면 삼각측량처럼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나아가요. 그런데 구성 요소가 한두 개 뿐이면 어디선가 반드시 두꺼운 벽에 부딪히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그러니까 몇 가지 포인트가 자기 안에 뚜렷이 존재함을 확인하기 전에는 장편을 시작할 수 없어요. 바람직한 세가지를 모으는 데는 또 그만한 시간이 걸리고요. 작가는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참을성 있게 가만히 기다려야 하죠. 이것이 집필을 시작할 수 있는 뚜렷한 포인트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일단 시작하면 하루에 열 장은 써야 합니다. 그러기를 일 년 쯤 줄기차게 계속해야 하고요. 중간에 망설여지거나 불확실한 부분이 있으면 도저히 나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포인트가 내 안에 탄탄하게 설정됐음을 분명히 확인해야죠. - P9

2차대전 이후 일본도 그랬는데, 많은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 피해자 입장에 놓으려고 했어요. 우리도 히틀러에게 속았고, 마음의 그림자를 빼앗겼고, 그 탓에 혹독하게 고생했다는 막연한 피해자 의식만 남죠. 일본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인식은 자꾸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문제로 도피하죠. 그런 것도 ‘나쁜 이야기‘가 낳은 일종의 뭐랄까, 휴요증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들도 속은 거라는 말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면이 있죠. 천황도 나쁘지 않다, 국민도 나쁘지 않다, 나쁜 건 군부다, 하는 식으로, 그게 집합적 무의식의 무서운 면입니다. - P10

무엇보다 중요한 게 말투, 소설로 말하면 문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신뢰감과 친밀감을 낳는 건 말투예요. 말투나 문체에 흡인력이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죠.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말투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귀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이스, 스타일, 말투를 매우 중요시하죠. 제 소슬은 너무 쉽게 읽힌다는 말을 곧잘 듣는데, 당연합니다. 그게 저의 스타일이니까. - P11

좋은 일은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니와 귀찮고 따분한 경우가 많아요. 반면 ‘나쁜 이야기‘는 대체로 단순하고 인간 심리의 표층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죠. 논리가 생략되었으니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져요. 거친 말을 쓴 헤이트스피치가 논리적이고 훌륭한 연설보다 귀에 잘 들어오는 법이고. - P12

마감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시간을 들일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추어야 해요. 좀전에 말했듯이, 집필에 시간을 들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집필 전에 시간을 가지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번역 일을 하거나 가끔 에세이를 쓰면서 일 년이나 이 년쯤 느긋하게 기다려요. 그러면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과 그 밖의 몇 가지 포인트가 떠오르죠. 그리고 어느 날, 됐다, 지금이야. 지금부터 쓰기 시작해야 해. 싶은 스타팅 포인트가 찾아옵니다. 그때부터 천천히 쓰기 시작해여.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자 어서 가세요, 하고 누가 떠밀어도 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훌륭한 서퍼도 좋은 파도가 오지 않으면 탈 수 없어요. 바로 지금이다, 라는 적절한 포인트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 P13

제가 그리고 싶은 주인공은 기본적으로는 보통 사람입니다. 보통의 생활감각을 가진 사람. 하지만 여러 면에서 아직 자유로운 처지인 사람. 누구든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붙죠. 그래도 삼십대 중반이면 아직 인생의 중간 지대에 머물고 있어요. 아마도 제게는 이야기의 물길 안내인 같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십대, 육십대라면 인생의 굴레 같은 게 딸려오니까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해지죠. 더는 젊지 않지만 아직 중년의 영역에 들어서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만 완전히 굳지 않았고, 확신도 약해요. 어디로 나아갈지도 자유. 그렇게 ‘어디로도 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저는 소설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겠죠. - P14

왜 독자가 따라와주는지 아세요? 제가 소설을 쓰고 독자가 읽어주는 관계가 현재 신용거래로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사십 년 가까이 소설을 써오면서, 독자가 절대 손해 보게 하진 않았으니까요. - P15

점술가를 예로 들면,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래도 직업으로 삼는다면, 누가 상담하러 와서 답을 해줘야 할 때 메시지가 전혀 내려오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되겠죠. 문제는 여기서 자발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매번 적절하게 벼락이 떨어져주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작은 속임수 같은 걸 쓰는 사이 나름의 영업 테크닉이 생겨요. 그래도 소설가는 마감만 없으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소설을 쓰고 말할 수 있어요. 벼락맞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작가는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을 때는 마감이 닥쳐오는데 머릿속은 텅 비고 아이디어 하나 없이 막막한 상황에서도 책상 앞에 앉아 막무가내로 쓰다보면 무언가 찾아오곤 해요. 찌릿찌릿하면서. 그렇게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마감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는 날이 오죠. 벼락이 저절로 떨어져주지 않아요. 그래도 마감이 있으니 - P16

어떻게든 이야기를 쥐어짜내 써버립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불성실한 일이고, 계속 그러다가 망해가는 작가를 적잖이 봐왔어요. 다들 젊을 때야 소설 따위 마감이 닥쳐서 쓰면 된다고 말하죠. 그런데 어떤 시점부터 그게 잘 안됩니다. 물론 벼락 맞는 빈도가 낮아도 다른 능력으로 보완할 수 있고 그 방법도 여러가지겠지만, 그런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소설 쓰기는 불가능할테죠. 아무리 좋은 문장을 쓰더라도 소설은 쓰지 못해요. 설령 쓴다 해도 읽어줄 사람이 없고요. 이것도 늘 하는 말인데,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소설을 쓸 수 없어요. 그런 소설은 구조가 빤히 들여다보일 때가 많아요. 읽어도 솔직히 재미있지 않고, 이성이 우세하니 일방통행의 진술이 되어버리죠. 평론가야 칭찬하지만 독자가 생기지 않아요. 물론 너무 바보여도 쓸 수 없고. - P17

장편소설은 최종적으로는 긍정적인 것을 남겨야 한다고 그때 생각했어요. 설령 비극적 엔딩일지라도 다음 단계로 탄탄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읽는 일도 엄청난 작업이잖아요. 그 엄청난 작업을 해낸 사람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무래도 필요합니다. 꼭 해피엔드여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래도 역시,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리라는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 독자의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살아남는 것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요소죠. 적어도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픽션에는. - P18

한 사람이 인생에서 정말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혹은 감명받을 수 있는 소설은 몇 편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몇 번이고 읽음 찬찬히 곱씹죠.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은 평생 대여섯 권 정도 만나지 않을까요.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책이 우리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소설가의 경우는 그 스트럭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바꿔 말하고 풀어 말하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설에 편입해갑니다. - P19

보르헤스가 어느날 시를 써서 친구에게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 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 P20

문장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규범은 제 생각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고리키의 ‘밑바닥에서‘에서 거지와 순례자의 대화. "내 말 듣고 있는거야?"하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답해요. 지금은 거지니 귀머거리니 하는 차별용어를 쓰면 안되지만 그 시절에는 아니었어요. 전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는데 보통 같으면 "내 말 듣고 있는거야?""듣고 있어"로 끝날 대화죠. 그런데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는 겁니다.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대답하니까 주고받는 말 속에 역동감이 생겨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못하는 작가가 세상에는 많거든요. 저는 항상 그 사실을 의식합니다. - P21

또 하나는 비요. 챈들러가 쓴 비유 중에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라는 게 있어요. 예전에도 몇 번 예로 든 문장인데, 만약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드물다"라고만 하면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예사롭게 휙 읽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하면 "호오!" 싶잖아요. 그러고 보니 뚱뚱한 우편배달부는 본 적 없는데, 하고. 그게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생겨나고 움직임이 생겨나죠. 귀머거리 아니야, 와 뚱뚱한 우편배달부, 이 두가지가 제 글쓰기 요령입니다. 그 요령만 알면 제법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거에요. - P22

말의 울림은 중요합니다. 구체적이고 피지컬한 울림. 설령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만 보더라도 울림이 있어야 해요.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합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고, 소리내는 대신 눈으로 울림을 느낀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항상 음악에서 글쓰는 법을 배운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고 울림을 느끼고 그 울림이 더 아름답게 울리게끔 바로잡아가는 작업을 중요시해요. 마침표, 쉼표도 리듬이잖아요. 그런 게 무척 중요해요. - P23

스트럭처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거의 의식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이미 갖춰져 있어야 하니까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의 골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 형태가 어디서 생겨나느냐 하면, 주로 지금껏 자신이 읽어온 소설,그리고 써온 소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미 자기안에 자명하게 존재하는 것이징. 그러니까 새삼 생각할 일이 없어요. 대신 문체를 생각해야죠. 그리고 문체가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 P24

장편소설은 "좋아 해보는거야!"가 아니라 "뭐 한 번 해볼까"에 깝게, 가벼운 기분으로 시험 삼아 써보면서 시작해요. 그러면 이야기가 자연히 뻗어나가고, 이윽고 본격적으로 소설 깊숙이 들어가게 되죠.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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