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며 사노 요코의 통통 튀는 글이 참 좋다 생각했는데 사노 요코의 다른 책들을 더 읽고나서 보니 이 책은 사노 요코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미스터 최를 향한 그녀의 시선 그리고 그에게 마음 놓고 모든 걸 터놓을 수 있었던 '관계'에 대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둘이 편지를 주고 받은 시간이 수십년인데 전반이나 후반이나 편지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사노 요코란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평생 개성 넘치고 기운 넘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다른 책을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그러니 이 책은, 젊은 시절 만나 소녀처럼 자신을 마음껏 터 놓을 수 있었던 상대에게, 평생에 걸쳐 그 자유로움과 편안함과 신뢰를 담아 자신의 본질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편지들이랄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친구를 만나는 건 아닐테다. 그런데 세상은 넓으니까, 스치고 스치고 스치다보면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더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닮은 구석이 없지만 앞으로의 인생길에서도 접점은 별로 없을 사람이지만 아 이 사람에겐 무슨 얘기를 해도 되겠구나 날 judge하지 않고 따뜻하게 들어주겠구나 날 응원해주겠구나. 사람의 영혼이 블럭 조각처럼 생겨먹었다면, 너와 나의 조각이 딱 맞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도 하더라는 것. 사노 요코가 죽기 전 10년간 쓴 책들을 보면 자신의 건망증과 노화에 대한 걱정, 치매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넣은 것에 대해 '버린 것'이라 말하는 자책감 등 아무리 씩씩하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느껴지는 글이 많은데(단 하나 대단한 점은 자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 몸이 아파 편지가 끊어지기까지도 미스터 최에게만은 늘 밝은 이야기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적는다. 그러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이 고단해도 그 사람 앞에선 기운이 나고 무슨 말이든 밝게 경쾌하게 술술 흘러나오게 되니까. 글도 좋지만 미스터 최와 사노 요코의 관계가 가지는 힘은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을 사노 요코의 베스트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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