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구판절판


'사람 도리'를 하며 무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남이 하지 ㅇ낳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 그 쓰임이 있을 것이다. 가끔 주변에서 자기 아이가 왕따가 될까봐 지나치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꼭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도 한때는 홀로 광야에서 배회하는 그 사회의 왕따였다. 그분은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마다 제자들과 군중을 물리치고 언덕으로 올라가 기꺼이 혼자가 되었다. 역사는 말없는 다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고독한 개인들의 몫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53쪽

우리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인생의 버스는 항상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187쪽

속독 완독 통독 등 가지가지 독서법이 있으나 독서에 드는 비용의 경중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가장 사치스런 독서법을 먼저 소개한다. 이른바 '현장독서법'이라 부를 수 있을 이 방법은 어지간한 살림살이의 독자들은 선뜻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쉽게 말해 이 독서법은 특정한 책을 골라 그것에 어울릴 만한 장소 (대체로 작품의 배경)에 가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으러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 요크셔로 가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둘러싼 인간들의 탐욕과 그로 인한 좌절을 실감나게 묘사한 존 크라가우어의 걸작 논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읽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눈내리는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198쪽

이 독서법엔 때도 중요하다. 작품을 먼저 정하고 가야 할 곳과 시기를 정하는 것이니 세계의 계절과 기후 동향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미안이야기는 로마에서 읽고 바다의 도시이야기는 베니스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왕 그 아름다운 도시까지 가느데 여행가방에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다 도 끼워넣도록 하자.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독서법은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돈과 시간이 없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상하게 이런 독서법에 별 관심이 없다. 조금 돈이 덜 드는 독서법은, 이왕 가기로 한 목적지가 배경인 책을 들고 가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를 들고 베트남에 간다면 중부 고원지방의 서늘한 바람을 책 속에서 맛볼 수 있겠고 교토로 가실 분들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간사이 지방의 고온다습한 공기와 잘 어울릴 터이다. -198쪽

마지막으로 가장 저렴한 (그러면서도 가격대 성능비가 꽤 우수한)독서법은, 이미 눈치빠른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집에서 위에 말한 모든 책들을 쌓아놓고 한권 한권 읽어가면서 남루한 우리의 일상을 베네스 교토 이스탄불 요크셔 히말라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돈이 별로 들지 ㅇ낳을 뿐 아니라 테러와 범죄, 풍토병과 과로의 위험도 없다. 그렇다고 감동이 반드시 '현장독서법'에 뒤지라는 법도 없다(어쩌면 더 강할 수도!)-190쪽

그 와중에도 지난 주말에는 경주에 꽃놀이를 다녀왔습니다.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분분한 벚꽃잎들 때문에 벚꽃금지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헛된 망상을 하기도 했습니다.-222쪽

한달 전 작가님 강연 듣고 감동받은 문창과 학생입니다. 작가들은 눌변이 많던 데 작가님은 말씀도 잘하시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손은 어찌나 하얗던지...제가 그때 첫 질문 했는데 인간 김영하에 대해..2세 계획은 없냐는 당돌한 질문도..그때 작가님은 "나는 호사취미도 없고 영화도 여행도 음악도 별로다. 2세도 갖지 않겠다. 고양이 키우면서 살겠다. 24시간 소설만 생각한다. 이번 생은 소설에 모든 걸 걸겠다" 말씀하셨죠.-263쪽

그러나 우주에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성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이에도 그 너머에도 수많은 별자리와 행성과 소혹성들이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엔진과 연료가 필요하다.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서에도 일정한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소설은 춤과 같아서 처음에도 즐겁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아는 작가가 많아지고 출판사나 번역자에 따라 책을 고르는 요령들을 터득해감에 따라 취향은 분명해지고 만족감도 커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책을 사야 할 지 알 수 없던 대형서점이 자기 방 서재처럼 친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중략>
소설 역시, 그래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단계에서, 이건 내 얘기가 아니지만 새롭고 탁월해, 라는 단계로 전이할 수 있다. 그 단계의 즐거움이 이전 단계의 즐거움에 비해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대단히 독특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로 전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초보 운전자들처럼, 바이엘을 배우는 피아노학원생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소설의 초보다. 따라서 훈련이 필요하다. 독서도 피아노와 같은 하나의 숙련된 기능이다.'
*앤디뽕님의 밑줄긋기를 붙여넣기 하였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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