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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평점 :
삶은 원래 힘들다, 엄살떨지 마라
<어른 공부> 양순자 지음
37살 아직 젊은 나이에 나는 겁도 없이
서울구치소 사형수 담당을 자원했어.
내 삶이 너무 버거워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때,
사형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까, 알고 싶었지. 그러면서 시작한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넘었어.
사형수들과 긴 세월을 함께하다 보니 안개에 옷 젖듯
나 자신이 사형수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행동할 때가 있어. 강의를 하러 조금 먼 길을 나설 때는 물론이고
잠깐 외출을 할 때도
나는 항상 집 안을 깨끗이 정리해.
깔끔하게 정리해놓고도 현관에 서서 한 번 더 집 안을 둘러보곤 하지.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p22)
불교 경전인 《보왕삼매경》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 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p26)
살다 보면 어느 날은 죽고 나면 지금의 고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겠지?
잠깐이면 이 모든 것과 이별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아가는 누구나 삶에서 힘든 순간, 이 생의 얽히고 얽힌 실타래와 같은 모든
인연과 관계의 끈을 놓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만날 수도 있다.
20대 때 부모님이 계시지만,
나 하나의 존재만을 인식하며 살 무렵에는
나 자신에 대한 선택과 결정에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용감했던 일들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를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다시는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순간을 소중히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 모든 것에서 끈을
놓고 싶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나를 붙잡는 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모든 순간, 죽음을 떠올린다.
죽음보다 삶에 더 가까이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두고 온 고향처럼 그리워한다.
저자는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저자는 선택했다.
근심과 곤란함으로써 세상을 살아가기로.
그녀는 어느 누구도 선뜻 도맡아 하지 못할
소임을 맡아
사형수들과의 연을 맺어왔다.
그녀가 함께 한 30년의 시간의 힘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일부 그들과의 인연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죽음에서 삶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간을 살았다.
진짜 사랑은 눈으로, 느낌으로
<어른 공부> 양순자 지음
나는 정말 크나큰 사랑의 힘을 경험한 적이 있어.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온몸을 사로잡는 전율을 느꼈지.
나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어.
(중략) 그렇게 헤어지고 11년 만에
그 모녀를 만나러 갔어.
갑자기 밖에서 사람이 부르니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도 못한 채로 밖에 서 있는 나를 봤는데,
그 어두운 방에서 빛나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나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눈이었어.
그 눈이 내 눈과 마주치면서 우리는 동시에
함께 전율했어.
10년이 지났으니 나도 늙고
저도 늙어 얼굴이 변했는데도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거야.
못 만나고 지낸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계속 마음으로 만나고 있었구나.
'너 오늘 한 번쯤은 마음껏 행복해 봐라.' 하며
나는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꼭 안아주었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빛,
마음의 눈이 빛나고 있었어.
그때 참 행복했어.
(p79~80)
나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 줄 때,
그 순간 상대에게도 그 진심은 전해진다.
나에게 무엇을 내어주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그 마음을 전부 내어주는 따뜻한 저자의 마음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눈은 여전히
그 순간의 마음과 다시 통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순수한 정성과 호의,
그리고 상대를 위하는 진심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사랑은 눈으로, 느낌으로
사랑을 무엇으로 재단하려고 하는 순간,
누구와 나누며 비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순수한 사랑은 무엇을 구원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가슴은 절대 차면 안 된다.
<어른 공부> 양순자 지음
몇 년 전에 강원도 인제에서 양구로 가는
꼬불꼬불 산길에서 버스 한 대가 추락했어.
사고 당일은 폭설 때문에 구조 작업도 못하고
다음날 구조에 들어갔지.
버스에 탄 22명 전원 사망.
시체를 옮기다 구조 대원들은 옷을 벗고
맨몸으로 얼어 있는 여성의 시체를 보고
깜짝 놀랐대.
그녀는 두 팔로 보따리 같은 것을
가슴에 안고 있었어.
그 속에 어린아이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거라.
아이는 아직 살아 있었어.
버스가 추락하고 의식이 있을 때
엄마는 자기 옷을 벗어 아이를 덮은 거야.
엄마의 뜨거운 가슴에 남아 있는 열을
숨을 거둘 대까지 아이에게 전달하고 있었던 거지.
마지막 체온 한 점까지 아끼지 않고
아이에게 다 전해주고 간 엄마 가슴.
그 어떤 언어로 이 깊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p113)
지금의 고등학생 아이가 초등학생 1~2학년 무렵,
당시 워킹맘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한
시간을 위해 일을 쉬게 되면서
아이를 위한,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배움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선택한 배움이 바로
그림책교육지도사 이다.
그림책으로 품지 못할 세상이 없구나를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림책은 단순히 어린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림책은 모든 연령이 함께 할 수 있는 언어가 있고,
예술이 있고, 상상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철학이 있고, 우리가 수많은 말로 설명해야 하는
그 어떤 것도단순한 몇 마디의 문장과
그림으로 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중 가슴 아프게 보았던 그림책
<엄마 까투리>가 떠올랐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몽실언니>,
<황소 아저씨> 등
다양한 여러 작품들 속에서
따스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엄마 까투리는 우리 현실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몇 년 전 어느 화재 참사 현장에서
고아로 자란 20대 어린 미혼모 엄마가
4살 어린 아들을 화마로부터 지켜주고
자신은 뜨거움 속에서 결국 스러져간 일도
가슴 아프게 기억이 난다.
가끔 정 반대의 엄마들을 만날 때,
우리는 분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저자가 언급한 폭설 속에 사고로 인한 전원 사망,
그러나 엄마의 희생이 어린아이를 살게 했다.
엄마의 가슴은 그런 것 같다.
꽁꽁 언 세상 속에서도 엄마의 온기로
세상을 버티고 살 수 있는 힘을 주고
어디가 앞인지,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도
살아갈 수 있는 생애 최초의 에너지와 사랑을
엄마의 가슴과 품에서 얻어 우리는
남은 생을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엄마로부터 얻은 그 생명의 씨앗이
다시 나에게서 또 나의 아이에게로
따뜻한 가슴으로 전해지는 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오늘 따뜻했는가 떠올려본다.
지긋이 기다려주면 좋은 것, 재능
<어른 공부> 양순자 지음
우리 아이들은 다 나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 들꽃입니다.
들꽃은 하늘에서 키워줍니다.
땅바닥이 갈라지는 긴 가뭄에도
나무는 쉽게 말라죽지 않습니다.
들꽃은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만 물을 먹지만
항상 싱싱합니다.
성급한 조급함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는 썩고 맙니다.
집에 나무나 화초 하나씩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관심 속에 키워봅시다.
조그만 화분 속에 잎과 꽃잎이
얼마나 신비한 몸짓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관찰하다 보면
그 안에서 인생을 깨닫게 됩니다.
무관심 속에서 잊고 있다가
어쩌다 한 번 봐준다면
그저 그런 화분일 뿐입니다.
꽃 시장에 나오는 값비싼 장미꽃만
꽃이 아닙니다.
들길을 걷다 길섶에 숨어있는
들꽃을 본 일이 있습니까?
아무도 자기를 봐주지 않아도
들꽃은 세상과 다투지 않고
자기만의 몸짓을 넉넉하게 하면서
예쁘게 피고 집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 장미도
이미 꺾인 꽃이라면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갑니다.
그러나 뭇사람의 발아래
수없이 밟히고 눌려도
들꽃은 자기만의 수명을
다하고 갑니다.
우리 아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능력을 갖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내 아이가 이 세상에
갖고 나온 능력만큼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이가 꿈꾸고
맘껏 숨 쉴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게 하고
태양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면 됩니다.
부모의 바람과 기대치 속에
아이들이
작아지지 않도록
그래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일을
망설이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 햇살 아래
반짝이는 들꽃처럼
자유롭게
이 세상에 왔습니다.
<어른 공부> 양순자 지음
지긋이 기다려주면 좋은 것. 재능
우리는 왜 지긋이 기다려주는 자연의 바람이,
때때로 고요하게 침묵하는 산과 바다가
되어주지 못할까.
침묵이 필요할 때, 침묵으로
정적을 깨는 다정한 대화가 필요할 때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대화를,
그저 눈빛과 존재만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할까.
저자의 시를 읽고, 옮겨 적어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들꽃 같은 아이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질문을 만나게 하는 구절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그저 어른 공부, 하나의 자기 계발서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만 먹지 말고 하루하루 나아져라!"라는 구절이
책의 표지에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하루하루
나아져야 할 것이 무엇일까.
내가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책장을 연 첫 느낌은
내가 이 책을 제목만 가지고 오해를 했구나 였다.
간혹, 첫인상과 전혀 다른 성품의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나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친한 친구가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처럼
진솔하지만, 가슴은 뜨거워지기도
따뜻해지기도 하는
이야기들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금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읽었다.
양순자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삶의 철학, 그녀가 그동안 만나온
경험들을 통해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 낸 진한 삶의 가치들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함께 읽어가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그림으로 묻고 글로 답해주신
장모의 글과
사위의 그림으로 완성된 책,
<인생 공부>
나의 멋진 인생 선배님 한 분을
내 가슴속에 새겨 넣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