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월이다.  일월이 꽝꽝 얼었다. 

꽝꽝 언 길을 미끄러지지도 않고 날은 벌써 열 발짝이나 성큼 걸어갔다. 

 

일월의 첫날, 나는 동해바다에 있었다.

부서지는 파도가 섬처럼 밀려왔다. 뒤집힌 파도를 향해 광기에 휩싸여 내리꽂히던 갈매기들처럼 내 마음도 갈피를 풀어헤치고 달아났다. 갈퀴를 흩날리고 발굽소리 천둥처럼 울리며 달려오던 파도에, 바다는 속수무책 허공에 부서져 흩어졌다. 그리고 나도…

부서져 허공에 흩어지는 바다 속으로, 비늘을 쏟아내는 칼바람 속으로, 하늘과 땅, 바다의 경계를 지워버린 잿빛 구름 속으로, 눈보라의 난무 속으로……

달아난 마음을 두고 빈껍데기로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길은 멀어도 상관없었다. 세 시간 가까이 대관령에 갇혀있는 동안 세상의 풍경을 모두 지워버리며, 마치 거위 털 가득 든 하늘만한 자루가 터지기라도 한듯 쏟아지던 눈보라에, 또 그 속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섰다가 아닌 듯 얼른 눈옷을 두르던 자작나무들에 넋마저 빼앗겨버렸으니까.

덕분에 나는 돌아와 며칠을 열병을 앓아야 했다. 은유가 아니라 진짜 열에 들떠 몸살을 앓았다. 달아났다 지친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

춥다. 춥다는 표현마저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처럼 눈발이 날리고 있다. 또, 한, 밤을 불면으로 지새울 가로등 주위로 눈발이 뱅뱅 돈다. 그러다 웅크리고 엎드려 잠든 자동차들 위에 침묵으로 내려앉는 밤이다. 독주라도 마시고 흠뻑 취하고 싶다. 그거 말고는 목구멍을, 위장을, 뇌를, 심장을 뜨겁게 해 줄 게 아무것도 없지 싶다. 오늘 같은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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