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프랑스에, 인류에 헌정했다.

인류는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주었고 그 대가로 나는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 비긴 셈이다.

빌어먹을, 문학은 우리 모두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 에밀 아자르 -


그래, ‘빌어먹을’! 문학은 우리 모두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시시때때로 소설 속으로 도망쳐버리는 게으른 영혼이 있다. 어둠이 가시고, 새벽이 오고, 어수선한 낮이 지나면 어스름한 평온이 찾아든다. 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며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틈, 층과 층 사이에 위치한 세상.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 그러나 엄연한 세상. 나는 그 세상으로 도망치지만, 겨우 한 발만을 들여놓는다. 한 발만! 비겁하고 소심하게! 언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그토록 원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먼 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나의 선생은 말했다. 무조건 떠나라고. 배는 항해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뭍에 매여 하염없이 출렁거리기만 할 거면 이미 ‘배’이기를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고. 맙소사! 내가 배였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그저 저 바다를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떠나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던 게 전부였던 내가?

나는 내 영혼이 단지 타인의 상상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다 마침내 먼지가 되고, 기어이 그마저 증발해버릴까 봐 두렵다. 달궈진 철판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치지직! 그리고 끝나고 마는 것. 끝!

나는 미치거나 취해야만 숨 쉴 수 있는 ‘황당’한 세상을 꿈꾼다.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세상. 시간도 삼켜버린 세상. 차라리 백지인 세상을.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 한 세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면, 영혼마저 집어삼킬 듯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지칠 줄 모르고 위협하는 지옥의 그림자라도 전혀 두렵지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