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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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서 있는 사람이고 사람은 걸어 다니는 나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글·사진/ 한겨레출판


 


나무처럼 살고 싶은 사진사가 찍은 나무 사진들에 흠뻑 담긴 마음은 보는 이들에게 절로 전해진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하듯 사진사는 사진으로 표현한다. '사진으로 그린다'라는 자세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사 강재훈, 그의 사진에는 그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우리는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전하는 감동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나무를 찍은 그 사진 안에는 한자리에서 무던히 버텨낸 나무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눈길이 절로 간다. 거기에 강재훈 작가의 추억이 더해지니 마음이 반응한다.

 

 


 


왜 나무를 찍게 되었는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꺼내어놓은 그가 그리는 나무 사진은 도시의 단절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그리움과 이어짐'을 일깨워준다. 자연의 일부분임을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에게 나무는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사시사철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 나무를 그저 나무로 바라본 나에게 강재훈 사진사는 기꺼이 그가 교류한 나무와의 추억들을 나눠주고 있다. 말 없는 나무가 보여주는 베풂과 배려에 감복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걸어온 긴 시간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정리해 주었다.

 

'나무'를 통해 세상과 자연과 마음을 살피는 글을 읽고 있노라니 절로 평온해진다. 그는 여정 중 마주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와의 인연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그런 진중하고 진심 어린 자세 덕분에 우리는 그 나무의 이야기에 이 순간 귀 기울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를 매개로 확장된 저자의 사유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은 강재훈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역사, 사회, 기후 위기까지 다양한 범주로 나아간다. 나무와 대화하며 일궈나간 생각은 온기를 품은 글과 나무 사진으로 우리에게 깊숙이 안착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진동분교 오가는 길에서 반겨주던 파수 나무의 마지막 그루터기 사진,

몇 해째 나뭇잎을 달지 못하는, 바늘 같은 우듬지 사진,

농간 부리는 이들을 배척하는 배롱나무꽃 사진,

김홍도의 <세한도>같은 나무 사진,

수관 기피로 동반 성장해가는 배려 깊은 나무 사진,

다 함께 잘 사는 마을을 바라는 버팀목, 당산나무 사진,

온몸으로 철망을 품은 나무,

단종의 울음을 곁에서 보고 들어준 관음송 나무.

 

 


그의 사진기를 거쳐 우리에게 닿기까지 수없이 나누었을 그들만의 대화를 상상해 보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움직일 수 없으나 이미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움직이면서 이미 많은 것을 차지한 인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고 같이 자라고자 하는 수줍은 나무들의 이야기에 한 번의 부끄러움을, 스포츠 대회나 도로 등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무참히 훼손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은 철망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성장하는 나무, 죽은 나무인 줄 알았건만 움싹이 돋는 나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강재훈 저자가 전하고픈 경이로움에 빠져들고 있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을 읽고 오갔던 명절 나들이길에 유독 나무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제 서서히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듯하다. 강재훈 저자처럼 카메라를 메고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동네 곳곳에서 만나는 나무들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할 거다. 나랑 친구 할래요? 나무님.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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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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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고경태 저/ 한겨레출판



 

한동안 미드 <본즈>에 심취하였다. 오로지 '뼈'로 일어났던 상황을 구현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그 과정은 매번 경이로웠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구나~ ' 싶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본 헌터>는 체질인류학자 박선주가 한국전쟁 유골을 치열하게 좇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고경태는 글의 구성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낸다. 홀수 장은 유골, 유족, 유품, 등 참혹한 현장의 목소리가 소리 내는 공간으로, 짝수 장은 유해 발굴을 이끈 체질인류학자 박선주의 삶과 신념 그리고 발굴 현장의 목소리가 담겼다.

 

 


 

책은 독특한 자세로 발굴된 유해 'A4-5'가 문을 연다. 2023년 3월 10일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노출'된 유골로, 이 책의 씨앗이 되어 주었다. 이 유골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가와 후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이 세상에 고하는 외침이자 바람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 A4-5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묻혀 있는가"

 

 

박선주 선생님은 '본 헌터'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선과 신념으로 한국전쟁 유해 발굴의 현장에서 인생을 보냈다. 흔들림 없는 학자의 자세로 국군 전사자 발굴, 민간인 희생자 발굴 모두 가리지 않고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그의 뒷모습은 거대했다.

 

인간 박선주는 이과에서 문과로, 전자공학과에서 사학과로 마음을 바꿔 진학하게 된다. 언론인을 꿈꾸던 청년이 체질인류학자로 삶의 방향을 틀게 되는 데는 손보기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서 직관과 열정, 과학적 사고의 방법 그리고 발굴 현장에서의 자세를 배웠다. 그를 따라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류를 포함한 영장류의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체질인류학을 공부했다.

 

 


 

 

인류학자 박선주가 걸어온 길을 톺아보니 구석기 시대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스승인 손 선생님은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한 고고학계의 스타였다. 덕분에 박선주 선생님은 제천 점말 동굴, 아치섬 인골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흥수아이'와도 연이 닿았다. 차근차근 뼈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던 그는 현대사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인류학자 박선주는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 정신으로 사실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모던 미스' - 우리가 사실처럼 알고 있는 어떤 지식이 꾸며진 이야기일 수 있다 -를 염려해두고 문헌과 증언을 비롯한 갖가지 기록과 직접 발굴하고 유해를 뒤져본 뒤의 결과로 사실 여부를 검증하려고 했다. <본 헌터>는 그 지치지 않는 탐구심과 열정, 책임감으로 유해를 분석하는 여정의 기록이다.

 

 

<본 헌터>는 뼈로 과거를 추적하는 이들의 시선뿐 아니라 유골, 유족 등 참혹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가, 시간과 흙 속에 파묻혀 색 바랜 기억들의 파편들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서 우리가 잘 몰랐던 처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연출한다. 한국전쟁 시기 이 한반도에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으스러진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조명한다. 왜 이렇게까지 죽였을까.

 

<본 헌터>는 민간인 희생자 발굴을 주 골자로 한다. 몇몇 들어본 지역의 이야기는 아는 것보다 끔찍했고, 비극이 벌어진 지역이 훨씬 많다는 사실 앞에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유일한 분단국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너머 사적인 감정이 뒤범벅된 민간인 학살의 내막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멸문, 뱃속의 태아까지 죽이는 인간성이 파괴된 순간에 멈춰버린 유족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배경은 군경, 미군, 적대세력 등 다양했다. '사색 없이 사형, 사형'당한 부역혐의자들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적인 복수 수단으로 이용당한 사례도 많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던 최승갑, 충무공의 후손들, 맹씨네 연좌제, 황골 새지기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들의 피 토하는 고백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 고경태와 인류학자 박선주는 결코 회의, 불신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참혹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억울한 죽음의 내막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이름과 고통을 후대에 사는 우리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먹먹한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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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NEON SIGN 6
김쿠만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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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김쿠만 저/ 네오픽션




네온사인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이다. 새로운(neon) 장르로 보내는 다양한 신호(sign)라는 기획 취지에 적합한 색다른 소설이다.

 

작가 본인의 이력 때문에 생긴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설정과 분위기가 다분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왠지 게임 회사 분위기가 딱! 이럴 것만 같다. @.@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은 B급 감성을 물씬 풍기는 SF 호러물로, 게임회사 신입사원의 눈물겨운 취업 체험담이 펼쳐진다.

 

소설 시작부터 '취업'은 했지만 이 업계에 대한 지식·정보가 전무후무한 신입사원 대호 씨를 따라 회사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시기는 2033년으로, 귀신을 때려잡는 가상현실 게임 <Project G> 출시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 투입되어 수많은 귀신 캐릭터 설정을 하게 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이 실로 생경하고 독창적인지라 김쿠만 작가의 상상력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챗지피티, 안드로이드, 3D 프린터, 메모리칩, 대화, 커밋. 읽어본 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 이 혁혁한 기술로 '귀신'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게임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이렇게 섬세하고도 지난한 수고를 들여야 한다니…

 


 


 

 

본부장에서 시작해서 본부장이 마무리하는, 제멋대로 기분대로 승인·번복을 되풀이하는 게임 개발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귀신' 보다 '본부장'이 더 징글징글, 부글부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글 전반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B급 감성과 유머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상황을 찰지게 살린다. 감각적인 소설을 빠르고 가볍게 전하고자 하는 '네온사인'답다.

 

 

"<Project G>의 G가 무슨 뜻인지 여쭤도 될까요?

되고 말고. 그 G는 굿에서 따왔네, 굿

Good이요?

아니? 영어 말고. 무당이 하는 굿."

 

"그 정도 욕은 공기라니까요."

 

"<Project G>를 위해 굿을 할 거예요.

굿이라고요?

그냥 굿도 아니에요. 살을 쏘는 굿이죠.

살이요?

뭐, 저주 같은 거라고 해두죠."

 

"호환되지 않은 VR 기기입니다. "

 

 

잘 풀리지 않는 회사 상황과 귀신의 출몰 등 여러 사건들을 같이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대호 씨와 함께 비명을 질러야 할 것만 같은 기묘하고도 기이한 이야기였다. SF 소설 판에서도 짠 내 나는 회사 생활을 극현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여러모로 감정을 자극하였다. 테크노밸리에서 부유하는 귀신과 망령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잊고 있었던 B급 감성을 끄집어내 그 재미를 일깨워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탄식 끝에 체념하는 듯한 대호 씨의 마지막 말이 신랄하다.

"망령은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만약 눈앞에 망령이 보인다면, 그 망령은 귀신일까? 게임 캐릭터일까? 게임 개발자일까?

어깨를 토닥이며 "내일은 더 괜찮을 거야." 힘을 전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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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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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무라타 사야카 저/ 은행나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구축한 <신앙>의 세계는 역시나 상상초월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 그만의 섬뜩하고 날카로운 플롯은 분명 두 발이 딛고 있던 단단한 땅을 싱크홀처럼 꺼뜨려버린다.

 

'믿음', 살아가는 동안 버팀목이 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너와 나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단단함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무라타 사야카 작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혹은 내일의 그들에게 묻는다. 특유의 날카로운 문체로 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회의를, 의문을, 사랑을 기어이 끌어올려 눈을 뜨게 해주려 하는 듯 하다. 한동안 혹독한 충격의 여파에 시달렸다.


 


 


6편의 단편과 2편의 에세이.

총 8편의 작품이 담긴 160페이지의 아담한 책 한 권으로 다양한 디스토피아를 겪는 감각적인 시간을 보냈다. 작품마다 새겨진 작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고자 애쓰는 시간이었다. 무라타 사야카의 세계에서 조우하는 따끔하고도 낯선 감정이 계속 표류하여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만나지 못해 생각하지 않고 무난하게 사는 나와 이미 감각하여 문득문득 껄끄러움이 찌르는 나, 누가 더 행복한걸까?

 


다 매력적인 작품들이지만, 특히 <생존>, <기분 좋음이라는 죄>, <쓰지 않은 소설>, <마지막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표제작인 <신앙>이 충격적인 전개로 디스토피아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다 읽은 후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들은 위 4편이었다.

 


<생존>의 배경은 고양이와 바퀴벌레와 인간만이 살아남은 지구이다. 생명력이 강한 존재들로 뽑힌 3종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구미가 말한 대로 '생존율'이 진정한 지배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보면서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건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통제되는 건지 헷갈렸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율에 매달리는 인간의 모습이 오늘날 성장과 효율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씁쓸하였다. 사랑에 진심인 A 하야토를 떠나 스스로 D가 되고자 하는 구미를 조용히 응원하였다. 우리의 내일이 이토록 섬뜩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라타 사야카 작가는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또한 혁신적이다.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 그는 처절한 진심을 담아 밀도있는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죄'라는 단어를 써서 그 정도를 완강하게 표현한 마음에 움직였다. 나 또한 '기분 좋음'에 자주 많이 압도당하는 사람인지라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쓰지 않은 소설>은 무라타 사야타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완결까지 쓰는 데 성공한 소설이 원형이라고 한다.

클론 가전을 구입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나르시시즘으로 봐야할 지, 사랑의 형태로 봐야할 지 그 경계가 구분하기 모호하다.

클론 가전을 4대나 구입한 점이나 자신을 나쓰코A로, 클론 가전을 나쓰코B, C, D, E로 이름 짓는 점, 장면 번호가 '4'에서 '205'나 되지만 빈 장면이 너무 많다는 점 등 독자가 메워야할 공백이 명백히 넓다. 그래서 <쓰지 않은 소설>일 수도. 클론이 인간 행세를 하고 인간이 클론 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쓰지 않은 소설'이 버젓히 '읽혀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다정한 이야기가 바로 <마지막 전시회>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멸종했지만, 우주인들이 계속 찾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시회' 덕분에 지구는 존재한다. 전시회 '마지막' 전시물에 의해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로 뒤덮인 우주를 상상해본다. 정말이지 아찔하고 숨막히는 아름다운 광경이리라. 그래서 발작을 일으켰나 보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한가보다.

 


책을 펼치고 덮는 순간 내내 긴장시키는 무라타 사야카 작가 덕분에 놀라운 경험을 한다. 날카로운 펜으로 세상을 그려내지만, 그 사유의 끝에는 사랑과 온기와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야기로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또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벌써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신작 <신앙>의 세계를 닫는다.

 

"나 자신을 소설을 쓰기 위해 세계에 놓여 있을 뿐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CREA> 무라타 사야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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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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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주변 지인들이 '요양보호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많이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간소화된 자격증 시험이 달라져서 망설이던 분들이 서둘러 지원하였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경력단절 여성들이 선호하는 자격증으로, 지인들도 은퇴한 이모도 큰 어려움 없이 합격하여 활동을 하였다. 이렇듯 '돌봄'의 영역에 속하는 직군에 종사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분명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업이지만,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과 '돌봄' 그리고 '노동'의 삼각형, 이 조합을 받치는 토양은 메마른 사막같이 황량하게만 다가온다.

 

항상 취약하다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에만 머물렀던 '돌봄'에 대한 영역에 관한 대담집이 눈에 띄어 한겨레 하니포터 8기 1월 활동 도서로 받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조기현 x 홍종원/ 한겨레출판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조기현 작가와 홍종원 작가의 대담집이다. 영 케어러와 홈 닥터가 만나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한다. 이 대담집을 접하면서 '돌봄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조금씩 희석시켜가고, 살피지 못했던 앎의 페이지를 천천히 채워나가고,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고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돌봄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돌봄 노동이 가사노동처럼 여겨 여성에 특화된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조기현 작가와 홍종현 작가는 시작부터 뒤흔든다.

영 케어러인 조기현 작가와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현 작가는 '청년'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경험하고 목격하고 들은 '아픔과 돌봄'의 오늘을 전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판적 대화를 진행한다. '돌보는 남성'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미 '정상 가족', '공동체' 등 기존의 구조가 기초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이혼가정, 조손가정, 1인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는 가정에서는 더 이상 '돌봄 노동'이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에게 아니 가정 내 약자에게 부과되었던 돌봄 노동의 부당성과 불평등을 짚어낸다.

 

 


 

 


이 대담집은 단순히 '돌봄'의 필요를 외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돌봄'을 일상으로 가져와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점이 고무적이다. 질병, 사고, 노화로 인한 아픔과 고통 옆의 돌봄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만나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의 돌봄을 말한다.

우리가 '간병'을 받게 되는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생산'이 중요한 사회에서 '건강한 노동력'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의존해야 하는 자신을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도 하고, 남이 나에게 의존하기도 하는 이 순환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돌봄이 우리가 맺는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전반적인 대화의 방향 -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 왜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 - 언제, 누구, 어디서, 어떻게

총 5번의 만남을 통해 '돌봄의 관계'를 열정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영 케어러로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한 조 작가와 방문진료를 하는 의자로서 책을 쓰고 지역 활동을 하는 홍 작가의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끌어주고 풀어준 데는 진행자인 김경훈 편집자의 공이 큰 듯하다. 그의 후기 속 '극진한 비효율성'이라는 단어처럼 이 책은 성장과 효율을 최고로 치는 오늘날에 비효율을 극진하게 다해야 비로소 가치가 빛난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분들이라 다양한 사례들로 현장과 제도의 취약점과 사각지대 등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와닿았다. '돌봄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돌봄 노동자도, 돌봄 수혜자도, 돌봄 가족도 제대로 존중받지도, 배려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리고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돌봄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심어주었다. 가정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돌봄'을 부담으로 만들고 죄책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지어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연결과 협업을 통한 연대로 돌봄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돌봄'에서 시작하여 청년, 자기 돌봄, 사랑, 연대, 장소 안도감, 돌봄인지감수성, 생산과 재생산, 죽음, 애도, 치료, 행정, 장애인, 탈시설 등 다양한 개념과 의미, 가치로 뻗어나가는 대담집을 통해 돌봄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모른다, 어렵다……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다. 제도 개선과 확립으로, 가치관의 변화로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돌봄'의 관계는 다양한 이들과 만나 대화 나누는 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돌봄을 멀리 생각하지 말고, 작고 사소한 우리의 일상이 다 돌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돌볼 수 있는 사회,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단절되고 분절된,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에서 돌봄의 순환을 다 같이 이야기하는 시작이 되어주는 책이다.

 

한겨레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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