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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나무는 서 있는 사람이고 사람은 걸어 다니는 나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글·사진/ 한겨레출판
나무처럼 살고 싶은 사진사가 찍은 나무 사진들에 흠뻑 담긴 마음은 보는 이들에게 절로 전해진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하듯 사진사는 사진으로 표현한다. '사진으로 그린다'라는 자세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사 강재훈, 그의 사진에는 그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우리는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전하는 감동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나무를 찍은 그 사진 안에는 한자리에서 무던히 버텨낸 나무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눈길이 절로 간다. 거기에 강재훈 작가의 추억이 더해지니 마음이 반응한다.
왜 나무를 찍게 되었는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꺼내어놓은 그가 그리는 나무 사진은 도시의 단절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그리움과 이어짐'을 일깨워준다. 자연의 일부분임을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에게 나무는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사시사철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 나무를 그저 나무로 바라본 나에게 강재훈 사진사는 기꺼이 그가 교류한 나무와의 추억들을 나눠주고 있다. 말 없는 나무가 보여주는 베풂과 배려에 감복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걸어온 긴 시간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정리해 주었다.
'나무'를 통해 세상과 자연과 마음을 살피는 글을 읽고 있노라니 절로 평온해진다. 그는 여정 중 마주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와의 인연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그런 진중하고 진심 어린 자세 덕분에 우리는 그 나무의 이야기에 이 순간 귀 기울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를 매개로 확장된 저자의 사유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은 강재훈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역사, 사회, 기후 위기까지 다양한 범주로 나아간다. 나무와 대화하며 일궈나간 생각은 온기를 품은 글과 나무 사진으로 우리에게 깊숙이 안착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진동분교 오가는 길에서 반겨주던 파수 나무의 마지막 그루터기 사진,
몇 해째 나뭇잎을 달지 못하는, 바늘 같은 우듬지 사진,
농간 부리는 이들을 배척하는 배롱나무꽃 사진,
김홍도의 <세한도>같은 나무 사진,
수관 기피로 동반 성장해가는 배려 깊은 나무 사진,
다 함께 잘 사는 마을을 바라는 버팀목, 당산나무 사진,
온몸으로 철망을 품은 나무,
단종의 울음을 곁에서 보고 들어준 관음송 나무.
그의 사진기를 거쳐 우리에게 닿기까지 수없이 나누었을 그들만의 대화를 상상해 보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움직일 수 없으나 이미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움직이면서 이미 많은 것을 차지한 인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고 같이 자라고자 하는 수줍은 나무들의 이야기에 한 번의 부끄러움을, 스포츠 대회나 도로 등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무참히 훼손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은 철망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성장하는 나무, 죽은 나무인 줄 알았건만 움싹이 돋는 나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강재훈 저자가 전하고픈 경이로움에 빠져들고 있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을 읽고 오갔던 명절 나들이길에 유독 나무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제 서서히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듯하다. 강재훈 저자처럼 카메라를 메고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동네 곳곳에서 만나는 나무들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할 거다. 나랑 친구 할래요? 나무님.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