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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작년에 주변 지인들이 '요양보호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많이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간소화된 자격증 시험이 달라져서 망설이던 분들이 서둘러 지원하였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경력단절 여성들이 선호하는 자격증으로, 지인들도 은퇴한 이모도 큰 어려움 없이 합격하여 활동을 하였다. 이렇듯 '돌봄'의 영역에 속하는 직군에 종사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분명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업이지만,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과 '돌봄' 그리고 '노동'의 삼각형, 이 조합을 받치는 토양은 메마른 사막같이 황량하게만 다가온다.
항상 취약하다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에만 머물렀던 '돌봄'에 대한 영역에 관한 대담집이 눈에 띄어 한겨레 하니포터 8기 1월 활동 도서로 받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조기현 x 홍종원/ 한겨레출판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조기현 작가와 홍종원 작가의 대담집이다. 영 케어러와 홈 닥터가 만나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한다. 이 대담집을 접하면서 '돌봄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조금씩 희석시켜가고, 살피지 못했던 앎의 페이지를 천천히 채워나가고,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고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돌봄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돌봄 노동이 가사노동처럼 여겨 여성에 특화된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조기현 작가와 홍종현 작가는 시작부터 뒤흔든다.
영 케어러인 조기현 작가와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현 작가는 '청년'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경험하고 목격하고 들은 '아픔과 돌봄'의 오늘을 전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판적 대화를 진행한다. '돌보는 남성'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미 '정상 가족', '공동체' 등 기존의 구조가 기초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이혼가정, 조손가정, 1인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는 가정에서는 더 이상 '돌봄 노동'이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에게 아니 가정 내 약자에게 부과되었던 돌봄 노동의 부당성과 불평등을 짚어낸다.
이 대담집은 단순히 '돌봄'의 필요를 외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돌봄'을 일상으로 가져와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점이 고무적이다. 질병, 사고, 노화로 인한 아픔과 고통 옆의 돌봄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만나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의 돌봄을 말한다.
우리가 '간병'을 받게 되는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생산'이 중요한 사회에서 '건강한 노동력'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의존해야 하는 자신을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도 하고, 남이 나에게 의존하기도 하는 이 순환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돌봄이 우리가 맺는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전반적인 대화의 방향 -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 왜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 - 언제, 누구, 어디서, 어떻게
총 5번의 만남을 통해 '돌봄의 관계'를 열정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영 케어러로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한 조 작가와 방문진료를 하는 의자로서 책을 쓰고 지역 활동을 하는 홍 작가의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끌어주고 풀어준 데는 진행자인 김경훈 편집자의 공이 큰 듯하다. 그의 후기 속 '극진한 비효율성'이라는 단어처럼 이 책은 성장과 효율을 최고로 치는 오늘날에 비효율을 극진하게 다해야 비로소 가치가 빛난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분들이라 다양한 사례들로 현장과 제도의 취약점과 사각지대 등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와닿았다. '돌봄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돌봄 노동자도, 돌봄 수혜자도, 돌봄 가족도 제대로 존중받지도, 배려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리고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돌봄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심어주었다. 가정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돌봄'을 부담으로 만들고 죄책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지어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연결과 협업을 통한 연대로 돌봄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돌봄'에서 시작하여 청년, 자기 돌봄, 사랑, 연대, 장소 안도감, 돌봄인지감수성, 생산과 재생산, 죽음, 애도, 치료, 행정, 장애인, 탈시설 등 다양한 개념과 의미, 가치로 뻗어나가는 대담집을 통해 돌봄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모른다, 어렵다……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다. 제도 개선과 확립으로, 가치관의 변화로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돌봄'의 관계는 다양한 이들과 만나 대화 나누는 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돌봄을 멀리 생각하지 말고, 작고 사소한 우리의 일상이 다 돌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돌볼 수 있는 사회,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단절되고 분절된,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에서 돌봄의 순환을 다 같이 이야기하는 시작이 되어주는 책이다.
한겨레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