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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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무라타 사야카 저/ 은행나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구축한 <신앙>의 세계는 역시나 상상초월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 그만의 섬뜩하고 날카로운 플롯은 분명 두 발이 딛고 있던 단단한 땅을 싱크홀처럼 꺼뜨려버린다.

 

'믿음', 살아가는 동안 버팀목이 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너와 나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단단함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무라타 사야카 작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혹은 내일의 그들에게 묻는다. 특유의 날카로운 문체로 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회의를, 의문을, 사랑을 기어이 끌어올려 눈을 뜨게 해주려 하는 듯 하다. 한동안 혹독한 충격의 여파에 시달렸다.


 


 


6편의 단편과 2편의 에세이.

총 8편의 작품이 담긴 160페이지의 아담한 책 한 권으로 다양한 디스토피아를 겪는 감각적인 시간을 보냈다. 작품마다 새겨진 작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고자 애쓰는 시간이었다. 무라타 사야카의 세계에서 조우하는 따끔하고도 낯선 감정이 계속 표류하여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만나지 못해 생각하지 않고 무난하게 사는 나와 이미 감각하여 문득문득 껄끄러움이 찌르는 나, 누가 더 행복한걸까?

 


다 매력적인 작품들이지만, 특히 <생존>, <기분 좋음이라는 죄>, <쓰지 않은 소설>, <마지막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표제작인 <신앙>이 충격적인 전개로 디스토피아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다 읽은 후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들은 위 4편이었다.

 


<생존>의 배경은 고양이와 바퀴벌레와 인간만이 살아남은 지구이다. 생명력이 강한 존재들로 뽑힌 3종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구미가 말한 대로 '생존율'이 진정한 지배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보면서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건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통제되는 건지 헷갈렸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율에 매달리는 인간의 모습이 오늘날 성장과 효율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씁쓸하였다. 사랑에 진심인 A 하야토를 떠나 스스로 D가 되고자 하는 구미를 조용히 응원하였다. 우리의 내일이 이토록 섬뜩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라타 사야카 작가는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또한 혁신적이다.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 그는 처절한 진심을 담아 밀도있는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죄'라는 단어를 써서 그 정도를 완강하게 표현한 마음에 움직였다. 나 또한 '기분 좋음'에 자주 많이 압도당하는 사람인지라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쓰지 않은 소설>은 무라타 사야타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완결까지 쓰는 데 성공한 소설이 원형이라고 한다.

클론 가전을 구입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나르시시즘으로 봐야할 지, 사랑의 형태로 봐야할 지 그 경계가 구분하기 모호하다.

클론 가전을 4대나 구입한 점이나 자신을 나쓰코A로, 클론 가전을 나쓰코B, C, D, E로 이름 짓는 점, 장면 번호가 '4'에서 '205'나 되지만 빈 장면이 너무 많다는 점 등 독자가 메워야할 공백이 명백히 넓다. 그래서 <쓰지 않은 소설>일 수도. 클론이 인간 행세를 하고 인간이 클론 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쓰지 않은 소설'이 버젓히 '읽혀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다정한 이야기가 바로 <마지막 전시회>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멸종했지만, 우주인들이 계속 찾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시회' 덕분에 지구는 존재한다. 전시회 '마지막' 전시물에 의해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로 뒤덮인 우주를 상상해본다. 정말이지 아찔하고 숨막히는 아름다운 광경이리라. 그래서 발작을 일으켰나 보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한가보다.

 


책을 펼치고 덮는 순간 내내 긴장시키는 무라타 사야카 작가 덕분에 놀라운 경험을 한다. 날카로운 펜으로 세상을 그려내지만, 그 사유의 끝에는 사랑과 온기와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야기로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또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벌써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신작 <신앙>의 세계를 닫는다.

 

"나 자신을 소설을 쓰기 위해 세계에 놓여 있을 뿐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CREA> 무라타 사야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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