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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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고경태 저/ 한겨레출판



 

한동안 미드 <본즈>에 심취하였다. 오로지 '뼈'로 일어났던 상황을 구현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그 과정은 매번 경이로웠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구나~ ' 싶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본 헌터>는 체질인류학자 박선주가 한국전쟁 유골을 치열하게 좇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고경태는 글의 구성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낸다. 홀수 장은 유골, 유족, 유품, 등 참혹한 현장의 목소리가 소리 내는 공간으로, 짝수 장은 유해 발굴을 이끈 체질인류학자 박선주의 삶과 신념 그리고 발굴 현장의 목소리가 담겼다.

 

 


 

책은 독특한 자세로 발굴된 유해 'A4-5'가 문을 연다. 2023년 3월 10일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노출'된 유골로, 이 책의 씨앗이 되어 주었다. 이 유골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가와 후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이 세상에 고하는 외침이자 바람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 A4-5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묻혀 있는가"

 

 

박선주 선생님은 '본 헌터'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선과 신념으로 한국전쟁 유해 발굴의 현장에서 인생을 보냈다. 흔들림 없는 학자의 자세로 국군 전사자 발굴, 민간인 희생자 발굴 모두 가리지 않고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그의 뒷모습은 거대했다.

 

인간 박선주는 이과에서 문과로, 전자공학과에서 사학과로 마음을 바꿔 진학하게 된다. 언론인을 꿈꾸던 청년이 체질인류학자로 삶의 방향을 틀게 되는 데는 손보기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서 직관과 열정, 과학적 사고의 방법 그리고 발굴 현장에서의 자세를 배웠다. 그를 따라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류를 포함한 영장류의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체질인류학을 공부했다.

 

 


 

 

인류학자 박선주가 걸어온 길을 톺아보니 구석기 시대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스승인 손 선생님은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한 고고학계의 스타였다. 덕분에 박선주 선생님은 제천 점말 동굴, 아치섬 인골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흥수아이'와도 연이 닿았다. 차근차근 뼈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던 그는 현대사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인류학자 박선주는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 정신으로 사실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모던 미스' - 우리가 사실처럼 알고 있는 어떤 지식이 꾸며진 이야기일 수 있다 -를 염려해두고 문헌과 증언을 비롯한 갖가지 기록과 직접 발굴하고 유해를 뒤져본 뒤의 결과로 사실 여부를 검증하려고 했다. <본 헌터>는 그 지치지 않는 탐구심과 열정, 책임감으로 유해를 분석하는 여정의 기록이다.

 

 

<본 헌터>는 뼈로 과거를 추적하는 이들의 시선뿐 아니라 유골, 유족 등 참혹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가, 시간과 흙 속에 파묻혀 색 바랜 기억들의 파편들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서 우리가 잘 몰랐던 처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연출한다. 한국전쟁 시기 이 한반도에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으스러진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조명한다. 왜 이렇게까지 죽였을까.

 

<본 헌터>는 민간인 희생자 발굴을 주 골자로 한다. 몇몇 들어본 지역의 이야기는 아는 것보다 끔찍했고, 비극이 벌어진 지역이 훨씬 많다는 사실 앞에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유일한 분단국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너머 사적인 감정이 뒤범벅된 민간인 학살의 내막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멸문, 뱃속의 태아까지 죽이는 인간성이 파괴된 순간에 멈춰버린 유족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배경은 군경, 미군, 적대세력 등 다양했다. '사색 없이 사형, 사형'당한 부역혐의자들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적인 복수 수단으로 이용당한 사례도 많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던 최승갑, 충무공의 후손들, 맹씨네 연좌제, 황골 새지기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들의 피 토하는 고백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 고경태와 인류학자 박선주는 결코 회의, 불신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참혹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억울한 죽음의 내막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이름과 고통을 후대에 사는 우리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먹먹한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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