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두 번째 원고
김혜빈 외 지음 / 사계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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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두 번째 원고/ 사계절




사계절 출판사의 두 번째 원고 시리즈 <하지의 무능한탐정들>을 만났다. 2023년에 등단한 새로운 작가 5명을 만났다. 세로로 살짝 긴 직사각형의, 얇은 두께의 책 속에 세상을 향해 떠들고 싶은 게 많은 소설가들의 틈새를 비추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한 권으로 각양각색 인물들을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 듣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섯 소설가가 포착한 사회 속 낙차, 그 사이에 머무르는 존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로 알 수 있듯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발산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작가가 선보이는 인물에 집중하고 좇아가면서 그를 공감하고자 애쓰게 된다. 자연스레 읽으면서 앞으로 가 제목과 작가 이름을 다시 보고 와 읽게 되는 작품들이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작가를 기억하게 되었다. 










'늑대 인간'을 소재로 하여 타인과의 쌍방 소통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솔리터리 크리처 * 김혜빈] 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기억 속 '현아' 대신 '명우'로 다시 나타난 이십여 년 전 친구. 그와 만남을 가지면서 주변과 자신의 변화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을 서서히 그리고 있다. 혼자가 될 생각은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늑대 인간 명우를 곁에서 지켜본 덕분에 '나'는 변화를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진실을 대면할 힘도 필요하잖아요?"



흥미로웠다. 외로워서 늑대 인간이 된 이들이 동족과 소통하고자 여행하고 다가가는 모습이. 그들이 짖는 하울링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려 서로에게 닿기를, 그리고 힘차게 내달려 만나기를 고대하였다. 








call : 안 은밀한 대화


떠나버린 이의 뒷모습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 [정원사 * 김사사]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등장인물 영이, 해조, 승수 모두 '가족이 떠났다'라는 상실을 안고 있다. 동생이, 언니가, 남편이 떠난 이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엮어 가족 비슷한 느낌으로 연대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서로를 알게 되는 계기가 독특하고, 서로를 대하는 거리나 마음가짐이 느슨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딱! 적당했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는 내내 편안했다.


소설 속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이 마냥 밝지 않건만, 그 공기가 건조하지 않아 작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담담하게 아픔을 그려내 적당한 정도를 유지하는 김사사 작가의 완급 조절에 반했다. 











[권능 * 공현진]은 헤아리기 힘든 소설이었다. 초희 이모와 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가장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인물은 '엄마'였다. 그토록 친절하고 신실하다는 신자가 보여주는 공감력과 배려는 작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초희 이모의 지나친 집착과 날카로운 말과 행동은 감정이 무겁게 실려있어 공감하기는 힘들어도 그 사람의 상처 입은 속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싫다, 밉다, 나쁘다, 미쳤다 등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엄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사이에 낀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독자로서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표제작인 [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 하가람]은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했다. 이혼 소송 중인 호정과 추리소설가 지망생 기우는 탁구장에서 알게 되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기우는 탁구를 하고 싶어 탁구장에 갔지만, 기본기를 배우다 지쳐 그만두었다. 남들과 랠리를 주고받기를 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진짜인데요. 진짜 탁구요."



기우는 무능한 탐정들이 나오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소설을 쓴다. 호정은 제도가 보장해 주는 관계의 평온함 혹은 평온함이라 믿었던 것들을 결혼 생활이라 생각했다. 기우가 바라는 진짜 탁구와 호정이 바라는 관계가 결국에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주고받는 랠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려나. 아무려나. 호정과 기우의 이야기는 시작되었으니 지금은 외롭지 않으리라.






[이주 * 신보라]는 어려웠다. 이토록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되거나 결합되었다 분리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주와 나는 한 사람 같다. 그만큼 가깝고 잘 아는 것 같다. 또 극진히 챙기고 사랑한다. 하지만 부정하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창피해하고 불쌍하게 여긴다. 양가감정을 느끼는 관계, 떨어지기 힘든 관계 같다. 함께 있으면서 한 사람은 허기를 느끼고 있고, 다른 사람은 계속 먹고 있는 광경은 지독히도 이질적이다. 그들의 연대를, 공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려웠다. 




외로움에 대한 여러 글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한 공간에서 아니면 자기 공간에서 편한 자세로 원하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족들이 보였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소소한 일상이 빛나는 시간으로 마음에 채워진다.

[하지의 무능한 탐정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외로우니까." 이 말의 무게에 눌렸던 가슴이 새살이 차오르듯 봉긋 솟아오른다. 혼자가 아닌 우리로 존재하는 지금을 감사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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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때문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3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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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때문에/ 이상권 지음/ 자음과모음




"1점 때문에 아이들 운명이 바뀝니다."





청소년 소설을 즐겨읽고 좋아한다. 십 대 청소년 남매를 키우는 부모로서, 학부모로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감정과 상황, 실태를 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과 대화를 자주 하고,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내 아이'만 알아서는 안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요즘 십 대들의 문화와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청소년 소설 읽기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세상과는 다른 풋풋함과 미숙함이 느껴지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같이 웃고 울고 화내고 떠들다 보면 재밌었다. 그들의 성장을 마치 현실의 우리 아이들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성장처럼 흐뭇하게 바라보고 응원하였다. 이맘때쯤이면 이런 일들을 고민하고 저런 때는 이런 도전들을 하겠구나, 미리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읽었다. 




이번에 읽은 <1점 때문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큰아이가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학기를 보낸 후, 처음으로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혼자서 공부하던 아이가 갑자기 늘어난 학습량과 수준에 좌절감을 느끼고 SOS를 보낸 것이다.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해주었다. 하교 후에는 여유 있게 생활했던 아이가 학원 일정에 맞춰 늦은 귀가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입시 전쟁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큰아이는 진로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해서 더욱더 내신에 힘을 쏟았다. '1문제' 차이로 등수가, 등급이 달라지는 힘겨운 상황들이 벌어졌다. 그때마다 자책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행히 금방 털고 밝아지는 아이였지만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다시 맞이할 1년 6개월을 그려보면 가슴이 따끔따끔하다. 

그래서인지 <1점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감정이입이 되면서 소설 속 상황이 피부에 와닿았다. 현실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비현실적인 그 상황을 부정하면서도 입시 전쟁의 현주소라는 생각에 암담해졌다.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결국에는 어른들이 문제인 것이다.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만이 남은 오늘날의 학교가 서글프게 그려진다. 꿈과 미래를 위해 배움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좋은 대학, 좋은 과를 가기 위해 부족한 빈칸을 채우는 '결과'를 내기 위한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곳에도 바람은 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들이 햇살을 잘게 부수어 아래로 쏟아낸다. 학교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햇살을 뿌리듯이 학생들을 늘 일관되게 원칙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대하는 '선님'으로 남고자 하는 김민식 선생님이 계셨다. 






평교사로 퇴임을 꿈꾸는 민식 선생님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시험문제 오류 민원'에 휘말리고 만다. 소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다른 시험문제에 대한 민원으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상황들과 구성원들의 반응과 대처를 다루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교육'보다는 '성적'을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는 승자는 없고,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끝난다. 수학, 물리, 국어. 여러 영역에서 불거진 민원들은 원인도, 대처도, 반응도 달랐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여주면서 흡입력 있게 이끌어나가는 구성에 몰입하여 읽으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제대로 물리에 대해 논해보고자 했던 순수한 민식 선생님을 뒤로 한 채, '1등급'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얻자마자 떠나버린 이들은 승자인 양 의기양양했다.

한 편의 연극을 벌인 배우들의 모습 사이로 이 사건의 당사자인 민식 선생님과 채니 학생만이 황당한 결말을 마뜩잖다. 그래도 선생님과 학생의 마지막은 훈훈하게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들끓었던 마음이 그들이 나눈 잠깐의 대화로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이상권 작가님이 소설 속으로 끌어당긴 학교의 모습이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며, 저자 또한 이 글의 시작을 밝히고 있다.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돌아본 학창 시절 속 특별한 선생님은 없다. 체벌이 일상이었던 시절, 막강했던 교권이 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리고 교권과 학생 인권이 상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힘의 논리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채니 주변의 어른들이, 일련의 사태로 경쟁자를 떨쳐내려 한 부장 선생님이 눈에 띌 뿐이다.



'친구'를 '경쟁자'로 만들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과 학교의 내밀한 속내를 잘 포착한 작품으로, 씁쓸하지만 꼭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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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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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유이제 지음/ 창비/ 소설Y클럽





우리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끔찍한 비극을 여러 곳에서 접한다. 현실에서, 역사에서, 여러 콘텐츠에서. 소설Y클럽 <터널 103> 또한 비극의 시작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계속 소재로 소비되며 수많은 이야기로 우리를 일깨우는 이 '탐욕'의 결과는 이 소설에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괴물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한 여러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독자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크리처물인 소설 <터널 103>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가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유이제 작가의 노련미와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검은과부거미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처절하고도 치열한 사투는 어느새 다형과 승하의 호흡에 맞춰 같이 숨 쉬고 긴장하게 만든다. 

'검은과부거미'를 영어로 '블랙위도우'라 한다. 익숙한 마블 어벤저스의 히어로 블랙위도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레드룸에서 혹독한 훈련과 교육으로 비밀병기, 암살자로 키워진 그의 과거가 <터널 103> 속 무피귀와 겹쳐지면서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갑자기 마을을 덮친 괴물 무피귀를 피해 해저터널로 들어간 사람들은 수십 년 후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에 봉착하고 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살기 위해 터널로 들어갔던 이들이 바닷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터널 103>은 두렵지만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바깥세상에 대한 기대와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용기를 내어 홀로 터널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소녀 '서다형'의 발걸음으로 확장되는 소설이다. 옹골차고 단단하며 따뜻한 다형이지만 이제 열여섯 살, 세상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에는 미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터널 속 어른들은 이 힘겨운 짐을 기어이 그 아이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읽는 내내 그 아이에게 괜히 내가 부채의식을 느꼈다. 지도자, 어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무피귀에게서 다형을 구해준 '라승하'가 데려간 또 다른 생존자들의 마을을 둘러보면서 더욱더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 옛날에는 터널을 사이에 두고 생과 사가 갈라져 한쪽은 안도를, 다른 한쪽은 극한 공포를 경험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두 마을은 첨예하게 다른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터널 속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해 입구를 막아 괴물의 침입을 막은 황선태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어 당연하게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촌장을 맡고 있다. 대물림되는 자리는 권력이 되어버렸고, 현 촌장 황필규는 자기 입맛대로 권력을 행사하였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터널 속 사람들의 모습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중에 황선태가 치른 희생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는 경악스러웠지만, 촌장 황필규의 만행이 이해가 되었다. 




지도자의 역량과 가치관이 마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지켜보면서 다형과 승하 곁에 좋은 어른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척박한 현실에서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을 굳은 마음을 심어주었다. 




"중요한 건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준다는 거야.

우리 약속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터널에서 벗어나는 꿈을 포기하지 말자고."

- 서다형과 할아버지 서주필의 대화





다형은 내륙 쪽 차폐문을 여는 무모하고 막중한 임무를 위해 세상으로 나와 '라승하'를 만났다. 터널 속과는 달리 단란하고 안정적인 마을 공동체와 위기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이장과 경비대장도 만났다. 그리고 '싱아'와 '이준익' 대위와 다른 군인들도 만났다.

언더원-레비아탄-네피림, 극악무도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인간'에 대한 신의는 부서지고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전말 속에서도 이처럼 찬란한 이들이 존재하여 '폭신한 잔디밭에 누워 무피귀 걱정 없이 꾸벅꾸벅 졸 수 있는 날'을 염원할 수 있었다.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감히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을 벌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다. 다형이 '검은과부거미섬' 곳곳에서 만난 인연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를 먹고자 달려드는 무피귀, 그를 사심 없이 구해주고 힘겨운 여정을 함께해 준 승하, 차폐문을 열 수 있는 핵심 정보를 주었지만 무피귀로 변한 아버지의 먹이로 내던진 태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체로 차출되어 언더원이 되었지만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온 군인들. 그 수많은 만남을 거쳐 함께 살아남고자 터널로 돌아간 다형은 좌절하지만, 싱아와 승하의 도움을 받아 차폐문을 열고야 만다. 



"하하하"

검은 과거를 함께 닫은 다형과 승하의 웃음을 싣고 끝을 맺을 줄 알았건만, 유이제 작가는 끝까지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저 "나하고 똑같이 생겼어."를 반복하는 싱아가 지금처럼 해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자랄 수 있기를 바라건만 다형과 승하의 은밀한 시선 끝에서 부풀기 시작하는 불안이 나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책을 펼치기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달려드는 무피귀를 피해 숨 가쁘게 애절하게 마지막 장까지 읽어 내려갔다. 눈에 맺힌 눈물과 가슴에 박힌 돌덩이가 무겁게 마지막 페이지를 붙잡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불러일으킨 참극. 내륙 쪽 차폐문을 잠그고 떠나버린 군인들처럼 일을 벌이는 자들은 묻어버리거나 떠나버리는 게 쉽다. 그저 아무런 연유도 모른 채 일을 당하는 자들의 고통과 비명이, 일로 벌어진 결과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들의 사투가 계속될 뿐이다. 이 어둡고 슬픈 예감이 부디 흩어지기를 꿈꾼다.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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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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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창비




넷플리스에서 송중기 주연으로 제작된 영화 <로기완>이 내일 3월 1일 삼일절에 개봉한다. 남루한 옷차림에 핼쑥한 송중기와 '탈북인'이라는 단어가 만나 어떤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던 중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원작이며 창비에서 리마스터판을 출간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새 단장한 <로기완을 만났다>를 조우하였다. 




픽션이지만 논픽션처럼 느껴지는 흐름과 분위기, 구조의 소설이다. 탈북인 '로기완'이 소설 중심에 있지만, 김 작가가 그를 만나는 순간보다 그를 알게 되고 만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로기완은 살고자 했고, 김 작가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이니셜 L이 인터뷰 도중에 기자에게 한 말.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 로기완




그 말이 끌어당긴 세계로 도망친 김 작가는 진정 원하는 답을 얻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읽는 내내 김 작가는 로의 흔적을 쫓았고, 나는 김 작가의 상처를 감히 상상하였다. 

김 작가는 로의 일기를 참고하여 브뤼셀에 새겨진 로의 인생을 차근차근 따라가본다. 전혀 모르는 타인의 뒷모습을 쫓아 앞모습을 그려보고자 하는 그에게서 친절함과 대범함 그리고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김 작가는 로가 흘리는 보이는 눈물도, 윤주가 흘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도, 박의 여윈 눈동자를 적신 거짓 없는 눈물도 기꺼이 애틋함의 시선으로 완성해 주고자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맞바꾼, 방수포로 꽁꽁 싸맨 돈을 들고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 로기완. 벨기에로 건너와 브뤼셀 거리 이름을 외우며 거닐었던 그는 무심하고도 냉담한 폭력에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아 자립할 수 있었다. 글 중간에 그가 겪은 부당한 폭력에 뒤늦게라도 김 작가가 대신 소리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 나는 로이며, 김 작가이며, 무심한 타인이기도 했다. 소리치며 꾸짖다 울었다 부끄러웠다. 다 나인 듯해서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다. 사는 동안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기를, 고통을 상상할 수 있기를, 친절할 수 있기를. 




로의 자술서 중 박이 주 벨기에 한국 대사관 앞으로 쓴 코멘트


살아오면서 시간, 공간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은 세 사람이 비슷한 부채를 안고 무너지지 않도록 견디며 각자 방식으로 살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죄책감을 지닌 이에게 자석처럼 이끌리듯 박이 로에게, 김 작가가 로에게, 다시 김 작가가 박에게, 박이 김 작가에게 닿아 인생의 한 시절을 공유한다. 같이 교감하거나 홀로 상상하거나 그들이 타인에게 느꼈던 연민과 공감은 종국에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로 인도하였다. 



조해진 작가는 이를 유려한 문장으로 완성시켰다. 영상을 보는 듯한 묘사와 세심한 감정 표현도 좋았지만 김 작가 -로 - 박이 겪은 상실과 아픔과 고통을 구성한 소재가 놀라웠다. 가난, 굶주림, 난민, 불법 이민자, 존엄사, 조력 안락사 등 개인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환기가 되었다. 무심히, 가벼이 넘겨서는 안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경우들을 통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이 시대의 동반자로서 진정 어린 사유로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묻고 싶은 것뿐이에요. 살아남은 자들, 건강한 자들, 그들은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찾아내는 것 말고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그걸 묻고 싶은 거라고요!"

- 김 작가의 절규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로 끝나는 김 작가의 글. 로기완에게 첫 페이지는 이니셜 K로 다가갈 그 이야기의 끝 페이지에는 김 작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로기완, 류재이, 윤주, 박윤철.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나오지만, 이 소설의 화자인 '나' 김 작가의 이름은 나오지 않아 궁금했었다. '박'이 마지막 애달픈 포옹 끝에 회한의 감정이 갈무리되는 순간 '박윤철'로 뚜렷이 새겨지듯 '나' 김 작가 또한 그런 결정적인 찰나가 있을 거라 믿는다. 발산하듯 흘려보내 과거의 자책에 발목 잡혀 오늘의 상처에 침잠한 채 내일의 어둠에 얼어붙지 않기를 그려본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 박윤철의 답변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문제작이다. 나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쿵쿵 치다, 힘찬 심폐소생술로, 짜릿한 전류로 기어이 다시 뛰게 해 살아있는 지금을 감사하게 만든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으로서 홀로가 아닌 함께 오늘을 보내고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깨닫는 감동을 전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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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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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 구조사/ 김준일 지음/ 한겨레출판




삶은 예측불가다. 상상과 기대만큼 축복스럽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처참한 순간에 빛을 경험하기도 한다. 생과 사 사이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정확한 끝은 모르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은 흔치않다. 세상의 슬픔은, 고통은, 비극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날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그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묵직하고도 따뜻한 책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 구조사>를 만나 먹먹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감동을 정리해 보려 한다.



김준일 저자는 사무직 회사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해오다 갑자기 삶의 회의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어느 날 파라메딕이 되기로 결심했다. 2년의 짧은 교육 과정 이수와 괜찮은 보수가 직업이라는 이유로. 의료계와 접점이 없던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종사자의 절대다수가 백인이고 이민 1세대는 거의 없는 '파라메딕'에 호기롭게 도전한 것이다.



억지로 출근하는 날을 뒤로하고 내 방식대로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삶, 실패했더라도 패자부활전이 있는 삶을 찾아온 캐나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이민 그리고 파라메딕이 되어 환자들을 살리는 일을 하며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담았다.

그는 수많은 환자들을 구조하면서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고, 단순히 열심히가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잘 챙기며 살아가는 인생을 보여준다.


그의 사유는 진짜 중요하지만 사소하게, 당연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인생은 다 같은 골인 지점을 바라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바라는 방향을 향해 원하는 빠르기로 나아가는 각자의 몫이라는 마음의 여유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구조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만 가지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건데도 '파라메딕'이 겪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에 매몰되었다.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긴장 상태로 활동을 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살리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동료 파라메딕의 조언처럼 적절한 거리 두기가 절실한 직군이 아닌가 싶다. 저자와 동료 파라메딕들이 현장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슬프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비장했다.



내가 하는 일의 무게란 무엇일까?

어쩌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나에게 일상이 된 것이며, 죽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견뎌내는 일에는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들어가는 글, p.9)


적어도 이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 보게 되는 마지막 사람이 나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파라메딕의 다이내믹한 하루, p.37)







책 속에 담긴 여러 사례들이 절박하고 간절한 그 순간을 잘 그리고 있었다. 가정 폭력, 술, 마약, 사고, 질병, 우울증, 자해, 자살 등 수많은 원인으로 파라메딕을 만나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다시 현실을 긍정할 수 있게, 감사할 수 있게, 오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파라메딕 활동뿐 아니라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된 캐나다 이민사를 바탕으로 여러 민족들의 적응과 자립, 성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피땀 흘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세계에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여길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어. 둘러보면 내 할아버지가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지었던 제방, 아버지가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었던 마을 회관 건물이 다 보이는데 나도 여기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그 추억을 다 버리고 가긴 어딜 가." (소가 웃을 일, p.115)





김준일 저자는 파라메딕으로 일하는 중에 참 괜찮다 싶은 경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극적인 순간만큼이나 이 직업이 좋을 때가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사소한 한마디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건넬 수 있을 때이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p.167)



이렇게나 따뜻한 마음을 어찌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도리어 '스스로 나서서 남을 돕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따뜻함으로 다친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것이라 표현한다. 하늘의 천사를 현실에서 마주한 듯하다.






김준일 저자는 파라메딕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였다. 한 생명이 활짝 꽃피우는 전성기가 지나고 차차 생명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잘 살 거라 믿었던 환자이기에 더 속상했던 그를 도리어 시한부 환자가 위로하는 광경은 어느 영화 클라이맥스보다 가슴이 미어졌다.



"괜찮아…. 나도 괜찮아질 거고, 너도 괜찮아질 거야…" (나를 비춰주는 환자들, p.189)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저자는 딸아이의 학교 숙제 덕분에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 오기'라는 숙제였다. 캐나다의 교육 현장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면서 쿵! 커다란 한방을 제대로 맞은 순간이었다.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되면서 스스로를 측은해하고 아끼게 되니 마음의 크기가 더 자라나 그동안 품었던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오늘을 버티고 또 내일을 보내야 가시밭길만이 아닌 꽃길을 볼 수 있다는 그에게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비춰 보고 배운다는 저자. 나는 그의 따뜻한 마음과 중요한 것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오늘로부터 삶의 가치를 배웠다. 용기 있게 대한민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자기가 정한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파라메딕 준이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준 것이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경이롭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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