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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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 구조사/ 김준일 지음/ 한겨레출판




삶은 예측불가다. 상상과 기대만큼 축복스럽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처참한 순간에 빛을 경험하기도 한다. 생과 사 사이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정확한 끝은 모르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은 흔치않다. 세상의 슬픔은, 고통은, 비극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날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그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묵직하고도 따뜻한 책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 구조사>를 만나 먹먹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감동을 정리해 보려 한다.



김준일 저자는 사무직 회사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해오다 갑자기 삶의 회의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어느 날 파라메딕이 되기로 결심했다. 2년의 짧은 교육 과정 이수와 괜찮은 보수가 직업이라는 이유로. 의료계와 접점이 없던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종사자의 절대다수가 백인이고 이민 1세대는 거의 없는 '파라메딕'에 호기롭게 도전한 것이다.



억지로 출근하는 날을 뒤로하고 내 방식대로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삶, 실패했더라도 패자부활전이 있는 삶을 찾아온 캐나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이민 그리고 파라메딕이 되어 환자들을 살리는 일을 하며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담았다.

그는 수많은 환자들을 구조하면서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고, 단순히 열심히가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잘 챙기며 살아가는 인생을 보여준다.


그의 사유는 진짜 중요하지만 사소하게, 당연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인생은 다 같은 골인 지점을 바라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바라는 방향을 향해 원하는 빠르기로 나아가는 각자의 몫이라는 마음의 여유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구조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만 가지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건데도 '파라메딕'이 겪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에 매몰되었다.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긴장 상태로 활동을 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살리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동료 파라메딕의 조언처럼 적절한 거리 두기가 절실한 직군이 아닌가 싶다. 저자와 동료 파라메딕들이 현장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슬프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비장했다.



내가 하는 일의 무게란 무엇일까?

어쩌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나에게 일상이 된 것이며, 죽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견뎌내는 일에는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들어가는 글, p.9)


적어도 이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 보게 되는 마지막 사람이 나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파라메딕의 다이내믹한 하루, p.37)







책 속에 담긴 여러 사례들이 절박하고 간절한 그 순간을 잘 그리고 있었다. 가정 폭력, 술, 마약, 사고, 질병, 우울증, 자해, 자살 등 수많은 원인으로 파라메딕을 만나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다시 현실을 긍정할 수 있게, 감사할 수 있게, 오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파라메딕 활동뿐 아니라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된 캐나다 이민사를 바탕으로 여러 민족들의 적응과 자립, 성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피땀 흘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세계에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여길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어. 둘러보면 내 할아버지가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지었던 제방, 아버지가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었던 마을 회관 건물이 다 보이는데 나도 여기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그 추억을 다 버리고 가긴 어딜 가." (소가 웃을 일, p.115)





김준일 저자는 파라메딕으로 일하는 중에 참 괜찮다 싶은 경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극적인 순간만큼이나 이 직업이 좋을 때가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사소한 한마디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건넬 수 있을 때이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p.167)



이렇게나 따뜻한 마음을 어찌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도리어 '스스로 나서서 남을 돕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따뜻함으로 다친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것이라 표현한다. 하늘의 천사를 현실에서 마주한 듯하다.






김준일 저자는 파라메딕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였다. 한 생명이 활짝 꽃피우는 전성기가 지나고 차차 생명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잘 살 거라 믿었던 환자이기에 더 속상했던 그를 도리어 시한부 환자가 위로하는 광경은 어느 영화 클라이맥스보다 가슴이 미어졌다.



"괜찮아…. 나도 괜찮아질 거고, 너도 괜찮아질 거야…" (나를 비춰주는 환자들, p.189)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저자는 딸아이의 학교 숙제 덕분에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 오기'라는 숙제였다. 캐나다의 교육 현장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면서 쿵! 커다란 한방을 제대로 맞은 순간이었다.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되면서 스스로를 측은해하고 아끼게 되니 마음의 크기가 더 자라나 그동안 품었던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오늘을 버티고 또 내일을 보내야 가시밭길만이 아닌 꽃길을 볼 수 있다는 그에게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비춰 보고 배운다는 저자. 나는 그의 따뜻한 마음과 중요한 것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오늘로부터 삶의 가치를 배웠다. 용기 있게 대한민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자기가 정한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파라메딕 준이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준 것이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경이롭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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