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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창비
넷플리스에서 송중기 주연으로 제작된 영화 <로기완>이 내일 3월 1일 삼일절에 개봉한다. 남루한 옷차림에 핼쑥한 송중기와 '탈북인'이라는 단어가 만나 어떤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던 중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원작이며 창비에서 리마스터판을 출간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새 단장한 <로기완을 만났다>를 조우하였다.
픽션이지만 논픽션처럼 느껴지는 흐름과 분위기, 구조의 소설이다. 탈북인 '로기완'이 소설 중심에 있지만, 김 작가가 그를 만나는 순간보다 그를 알게 되고 만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로기완은 살고자 했고, 김 작가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이니셜 L이 인터뷰 도중에 기자에게 한 말.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그 말이 끌어당긴 세계로 도망친 김 작가는 진정 원하는 답을 얻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읽는 내내 김 작가는 로의 흔적을 쫓았고, 나는 김 작가의 상처를 감히 상상하였다.
김 작가는 로의 일기를 참고하여 브뤼셀에 새겨진 로의 인생을 차근차근 따라가본다. 전혀 모르는 타인의 뒷모습을 쫓아 앞모습을 그려보고자 하는 그에게서 친절함과 대범함 그리고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김 작가는 로가 흘리는 보이는 눈물도, 윤주가 흘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도, 박의 여윈 눈동자를 적신 거짓 없는 눈물도 기꺼이 애틋함의 시선으로 완성해 주고자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맞바꾼, 방수포로 꽁꽁 싸맨 돈을 들고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 로기완. 벨기에로 건너와 브뤼셀 거리 이름을 외우며 거닐었던 그는 무심하고도 냉담한 폭력에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아 자립할 수 있었다. 글 중간에 그가 겪은 부당한 폭력에 뒤늦게라도 김 작가가 대신 소리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 나는 로이며, 김 작가이며, 무심한 타인이기도 했다. 소리치며 꾸짖다 울었다 부끄러웠다. 다 나인 듯해서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다. 사는 동안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기를, 고통을 상상할 수 있기를, 친절할 수 있기를.
로의 자술서 중 박이 주 벨기에 한국 대사관 앞으로 쓴 코멘트
살아오면서 시간, 공간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은 세 사람이 비슷한 부채를 안고 무너지지 않도록 견디며 각자 방식으로 살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죄책감을 지닌 이에게 자석처럼 이끌리듯 박이 로에게, 김 작가가 로에게, 다시 김 작가가 박에게, 박이 김 작가에게 닿아 인생의 한 시절을 공유한다. 같이 교감하거나 홀로 상상하거나 그들이 타인에게 느꼈던 연민과 공감은 종국에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로 인도하였다.
조해진 작가는 이를 유려한 문장으로 완성시켰다. 영상을 보는 듯한 묘사와 세심한 감정 표현도 좋았지만 김 작가 -로 - 박이 겪은 상실과 아픔과 고통을 구성한 소재가 놀라웠다. 가난, 굶주림, 난민, 불법 이민자, 존엄사, 조력 안락사 등 개인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환기가 되었다. 무심히, 가벼이 넘겨서는 안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경우들을 통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이 시대의 동반자로서 진정 어린 사유로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묻고 싶은 것뿐이에요. 살아남은 자들, 건강한 자들, 그들은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찾아내는 것 말고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그걸 묻고 싶은 거라고요!"
- 김 작가의 절규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로 끝나는 김 작가의 글. 로기완에게 첫 페이지는 이니셜 K로 다가갈 그 이야기의 끝 페이지에는 김 작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로기완, 류재이, 윤주, 박윤철.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나오지만, 이 소설의 화자인 '나' 김 작가의 이름은 나오지 않아 궁금했었다. '박'이 마지막 애달픈 포옹 끝에 회한의 감정이 갈무리되는 순간 '박윤철'로 뚜렷이 새겨지듯 '나' 김 작가 또한 그런 결정적인 찰나가 있을 거라 믿는다. 발산하듯 흘려보내 과거의 자책에 발목 잡혀 오늘의 상처에 침잠한 채 내일의 어둠에 얼어붙지 않기를 그려본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문제작이다. 나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쿵쿵 치다, 힘찬 심폐소생술로, 짜릿한 전류로 기어이 다시 뛰게 해 살아있는 지금을 감사하게 만든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으로서 홀로가 아닌 함께 오늘을 보내고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깨닫는 감동을 전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