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3월 5일, 오늘이 바로 개구리도 잠을 깨는 경칩이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사를 하고 맞는 첫번째 월요일 입니다. 바쁘고 힘들게 시작한 3월이지만 새봄, 새집에서의 생활이 다소 흥분되네요. 겨울동안의 나른함을 깨고, 조금더 쾌활하게 지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과 트위터 등 각종 미디어에 관한 검열이 더욱더 심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트위터업계에서는 각국 정부의 요청만 있으면 트윗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해 트위터리안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포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행해지는 검열은 사실 '자기검열'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검열에 관한 역사와 형태 등을 담고 있는 이 책이 탐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는 '자기검열'의 매커니즘을 살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삶에 관한 모든 것이 자본으로 귀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본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경쟁시키며, 모든 사람들을 각기 고립시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 점차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마치 지상낙원 사회인 것처럼 호도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자본'의 검은 힘은 점차로 사람들과 지구를 피폐화 하고 있습니다. 자본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남의 불행이나, 불합리한 사회현상 따위는 내 일만 아니라면 모르는 척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인간을 피폐화 시키는 자본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어느날 저녁 버스 안에서 창너머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슨무슨 스퀘어가 완공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비애를 채워줄 그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미래까지 담고있다는 이 책이 그 무엇이 되어줄지 기대합니다.

 

 

 

 

 

지구 종말론, 인류 멸망설 등은 비단 올해에만 화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발전되어 갈 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더 짙어져만 가고, 이대로 달려가서는 지구의 종착지가 '멸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우리들은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 같습니다.

고향집 앞에서 조그만 도서관의 관장이 되는 꿈을 꾸는 복도훈이 '묵시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은 문화비평서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폭주기관차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탐이 나는 책입니다.

이대로 기차가 탈선할 수 있도록 기도라도 해야는것 아닐까요.

자본주의의 종말을 꿈꾸면서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입을 닫게 됩니다.

 

 

 

 

 

 

 『미셸 푸코, 1926~1984』는 푸코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책보다 충실한 내용에 재미와 웃음까지 주며 푸코의 삶과 사유를 동시에 알 수 있는 유일한 한국어 책이다. (출판사 책소개 中)

 

평전의 매력은 위인을 구성하는 모든 것인 '개인사'에 있다라고 감히 외쳐봅니다. ^^;

반드시 꼭, 읽고 싶은 책 입니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작가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프란츠 카프카의 평전 역시 이달에 놓쳐서는 안되는 신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그런데 역서가 아닌 우리나라 저자의 책이네요. 카프카의 삶과 창작 과정을 연대기 순서로 살펴봄과 동시에 작품해설을 담고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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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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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며, 내 자신은 물론이고 참으로 많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유독 불행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가족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도 많은 가족들이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문제로, 피를 나눈 가족도 기본적으로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이다.

나와 타인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경계를 구분하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소통하는 것이 양질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란 피를 나눈 사이이고, 때문에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수시로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를 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속에서 관계가 악화된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하는 걱정의 진실은 도를 넘는 사랑이며, 사실은 간섭이며, 때때로 폭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으로 인해 속울음을 울고 있는지, 때때로 나는 나 혼자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곤 했다.

 

나는 평화로운 사람들을 늘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아왔다. 평화롭다라는 것은 안정된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엄마 아래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그토록 안정되고, 침착할 수 있는지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여, 나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리컬한 성격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원망은 늘 과거를 향하곤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늘 용서할 수 없다고 외쳐왔다. 그럴수록 나는 늘 불행했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나는 엄마가 될 자격조차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결혼을 했고, 생물학적인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내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가 엄마인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때만 조건부적인 사랑만을 주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날이 흘리지 않은 날보다 많았고, 아이의 우울한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를 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마도 그것이 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내 안의 자라지 못한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강좌와, 책을 찾아 읽었고, 상담공부를 하며 실제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 혼자만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며, 내 시선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속의 자라지 못한 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외로웠니, 얼마나 두려웠니, 사랑받고 싶었구나...

이상한 것은 내 속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안을 수 있게 되자 내 아이의 못마땅한 행동들이 전혀 못마땅하게 여겨지지 않았을뿐더러, 그저 바라만 보아도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게서 평화로움과 안정을 느낀다. 더이상은 내안에 미움이나 원망이 없다. 그것은 내가 과거의 엄마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놓아버렸다. 이제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한계설정'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다. 가족이 꼭 반드시 사랑일 필요는 없다라는 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도 엄밀하게는 타인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불행한 가족사를 마감하는 첫번째 순서가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을 주변의 엄마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아이는 제2의 '나'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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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30 14:56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꼬마요정 2012-02-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문제는... 참으로 어려워요..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비의딸 2012-02-21 22:26   좋아요 0 | URL
웅..? 도움이 되신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더 많이 도움 받으실꺼라 생각되네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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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동작을 해보라 해서 팔을 활짝 벌려 흔들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을 해보라는데 '고맙습니다'하며 목이 메였습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 묻는데 '감옥에 있습니다' 그말을 미처 못끝내고 울었습니다. "

-김진숙 님의 트윗에서

 

35미터 상공, 자신의 동료가 129일을 버티다 목을 맨 그곳에서 309일간을 서성이며 다리한번 제대로 쭉 펴본 일 없이 지낸 김진숙은 지난해 가장 많이 한 말이 '고맙습니다'였다고 했다. 흔히 밑바닥이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노동판을 떠돌며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을 보낸 그녀는 급기야 스믈여섯의 나이에 해고자가 되었다. 쥐똥이 섞인 보리밥을 도시락으로 내주던 조선소에서 용접 불똥이 튀어 뺨이 얼기고 설켜도, 너덜너덜해진 작업복을 테이프로 기워입었어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죽는 동료를 보고도,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죽는 동료를 보고도, 그것은 개인의 부주의 탓이였지 회사의 안전불감증, 노동자학대가 아니었다고 증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그녀는 그래도 그나마 아침마다 일하기 위해 출근할 수 있고, 월급을 탈 수 있는 직장이었기에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다시 용접을 할 수 있게 되기를 투쟁하다 빨갱이로 찍혀 대공분실과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수배생활을 하다보니 어느덧 쉰이 넘었다. 2011년 1월 한진중공업이 또다시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기로 한 하루 전 새벽 그녀는 동료 김주익이 목을 맨 바로 그 크레인에 올랐다. 그리고 그 후 309일간, 그녀는 '고맙습니다'란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했다.

 

다행이다. 참 말 다행이다 싶었다. 쉰이 넘도록 억울함을 벗기 위해 투쟁했던 그녀가, 동료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마치 자신의 탓마냥 괴로워했던 그녀가, 두다리도 편히 뻗을 수 없는 그곳 크레인 위에서 고맙습니다란 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참 다행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 자신이 참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치료를 받는 중인 그녀는 연극치료중 가장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끝맺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끝내 부르지 못한 이름은 '송경동' 이었다. 송경동 시인은 크레인 위의 김진숙을 만나러가는 '희망버스'를 기획한 자로 구속되어, 1월 17일 10시 20분 첫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잡혀있는 숨은 이유는 희망버스가 쌍용으로 재능으로 콜트-콜텍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현장으로 달릴 것을 두려워한 구속이었다.

희망버스를 계속 달리게 하자는 배후로 송경동이 지목되었지만, 사실 희망버스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시민들의 참여 운동이었다. 누가 강제로 끌어내거나 재촉했던 의무감에 의한 것이 아닌 불합리한 세상을 좀 더 즐겁게, 가볍게, 경쾌하게 바꿔보자는 시민들의 자발적 축제의 장이였다.

 

노동이라거나 운동이라거나에 아는것이 전혀 없고, 시를 즐겨읽는 것도 아니었던 나는 송경동 시인을 김진숙을 통해 알았다. 김진숙이 가슴아파 차마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송경동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는 송경동, 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는 대추리에서, 삼성반도체에서, 기륭전자에서, 용산에서 노동자들과 철거민이 마땅히 받아야할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누구를 위한, 누구만을 위한 세상이 아닌 모두를 위한 세상인데 그것이 죄인가. 그의 꿈은 김진숙의 꿈이기도 하고, 99%인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다.

희망버스가 달리지 못한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농성장에는 '희망텐트'가 있다. 그곳에서는 쌍용차 노조원 20여명이 농성하고 있으며, 희망텐트는 1월 5일로 30일 째가 되었다고 한다. 새해 소망이 공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그들은 모두에게 잊혀질까봐 가장 두렵다고 했다. 잊지 않아야 한다. 영하 10도가 오르내리는 이 겨울,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해야만 하는 그들의 절망과, 그들의 절망이 우리들의 미래임을 잊지않아야 한다.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과 김진숙의 <소금꽃 나무>와 함께 송경동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나란히 책꽂이에 꽂으며, 참 마음이 아리다. 그의 책 옆에는 또 어떤 책을 꽂게 될까. '가난한 마음들이 이후로 부터는 가난을 이유로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의 책을 꽂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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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세계2차대전 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에 의해 '나치화'를 막기위한 목적을 가지고 UN에서 선포되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2048년 까지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또한 세계 어느나라의 법정에서도 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권법전을 만들자는 것이 바로 '2048 프로젝트'이다. 이 책은 2048프로젝트를 널리 알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제안을 수용하여 더욱더 실체적인 내용을 담은 성문법으로서의 세계인권법을 만들기 위한 그 첫번째 작업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인권은 아프리카 어딘가의 굶어죽어가는 어린아이에게서, 남미 어딘가 시위현장의 시민에게서, 혹은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또는 종교적 관습으로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이슬람국가에서 발견되고는 한다. 이처럼 인권이라는 것은 늘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시급 4,000원에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견뎌야 하는 식당 아줌마, 안전장치라고는 마스크가 전부인 톱밥 먼지구덩이 속에서 하루 12시간 꼬박 합판을 자르는 이주노동자, 화염구덩이 속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외쳤던 용산 남일당의 철거민들, 공부하느라 바빠 놀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는 초등학생, 입은 점퍼의 수준으로 편을 가르는 청소년들, 그리고 친구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방 창에서 뛰어내려야 만했던 한아이.... 그들에게 과연 인권이라는 것이 있었는가, 혹은 있는가.

경쟁에 바쁜 삶 속에서 내가, 혹은 내 아이와 내 가족이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며, 나 역시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고 있을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권에 대한 문제는 늘 강건너 불구경이 된다.

 

'인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늘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인권실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5가지 자유를 제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 부터의 자유, 공포로 부터의 자유, 환경의 자유이다.

언론의 자유란 표현의 자유로 대변되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기득권자들은 언론을 장악하여, 민중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한다.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인권 실현의 기본바탕이 된다. 또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안전'을 의미하는데, 가난으로 부터, 또는 기회의 불평등으로 부터 모든 죄악이 출발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결핍'의 속박을 풀어야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나는 언론이 자유롭고, 결핍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종교의 자유와 공포로 부터의 자유는 그저 따라오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환경의 자유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에서 채택된 제언은 아니지만, 저자가 2048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새롭게 제안한 개념으로, 우리의 생존과 지구의 생명을 위한 기본 개념이다. 대대로 우리가 사용하고 누려온 환경을 다음세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제적 형평성을 갖은 환경의 자유 또한 꼭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군비를 축소하고, GNP의 1%를 인권을 위한 기금으로 모으며, 인권 교육을 강화해 인권을 생활 속의 습관처럼 느끼자는 저자의 주장과 제언에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하고,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 강제력 또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동감한다. 다만, 책을 읽으며 거슬렸던 한 부분은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인 저자의 환경의 자유에 대한 부수적 설명이었는데,

'빈곤 지역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곤 한다.'(73쪽)라고 한 것에 대해 일시적인 분노를 느꼈다. 빈곤 지역의 사람들은 먹기 살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지만, 부국들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단지 '부'를 위해 심각하게 환경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노가 일시적일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환경의 자유'는 인권실현을 위한 다른 4가지 제언들과 함께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국제적 규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미국의 의료서비스와 관료주의, 자본지상주의자들에게도 비판의 끈을 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세세한 눈여김과, 그에따른 사실과 다른 설명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전체적인 틀의 일을 망치기도 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반대편의 사람들은 틈새를 노려 분열을 일으키고, 내분은 결국 스스로 일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와 다른 의견, 다른 생각들은 얼마든지 공론화 되고 논의되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라고 믿는다. 때문에 '2048 프로젝트'는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삶 속에서 각자가 느끼는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글로 써보는 작업, 더 나아가 '2048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일은 내가 갖은 촛불을 옆의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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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새해가 시작된지도 어느덧 한달하고 열흘이 지났고, 바야흐로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도시속에서 느끼는 봄의 느낌이란 겨우 쇼윈도우의 마네킹에게서 시작되곤 한다. 실제 느끼는 기온은 아직도 코끝이 빨개지도록 찬데, 쇼윈도우의 그녀들은 하늘한 쉬폰스커트에 발란한 티셔츠를 받쳐입고 온갖 화학물질로 치장된 조화 속에 파묻혀 꽃보다 더 환한 얼굴로 웃고있다. 빨개진 코를 하고 쇼윈도우를 바라보는 나는 그 느낌이 너무도 생경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고, 꿈속처럼 아련하게 '벌써 봄이구나.'라고 습관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봄의 느낌이란, 살얼음 아래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보드랍게 몽우리진 개나리와 목련 속에서 시작되곤 한다. 도시내기인 나는 전생애동안 단 한번도 그렇게 시작되는 봄을 본 일이 없지만, 상상속에서 봄은 항상 그렇게 시작되곤 한다.

인류에게 허락된 지구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을 다녀온 이후, 지구멸망은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렬해지는 요즘이다. 덜 입고, 덜 먹고, 덜 쓰는 삶을 강조하며 지구와 함께 인류의 생존을 염려하는 이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신의 영역을 넘보며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이 없다는 환상을 열심히 전도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지구의 미래가 밝고 희망차기만 한 것일까, 아니라면 은하계 넘어로 그들만의 다른 행성을 준비해놓기라도 한 것일까. 덜 쓰고 아끼는 삶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절규보다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만이 삶의 기쁨이요, 행복이라는 전도가 내아이에게 까지도 먹혀들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더더욱 나를 절망스럽게 한다.

 

 

몇주 후로 이사를 앞두고 몇몇 이사업체로 부터 견적을 받았다. 이사업체들은 한결같이 마무리 서비스로 새집증후군을 없애준다는 피톤치드 소독을 제안했는데, 나는 바보스럽게도 피톤치드가 바퀴벌레를 없애주기도 하는지를 물었다. 나의 이런 바보스러운 물음에 대해 '새 아파트에는 바퀴벌레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인즉, 요즘 아파트는 화학성분을 많이 사용해 짓다보니 바퀴벌레인들 남아나질 못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러한 화학성분을 피톤치드가 없애준다는 설명이었다.

어의없는 내 질문과, 그에 따른 제법 근거있는 답에 순간 나는 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바퀴벌레조차 살 수 없는 공간에서 살겠다고 기어이 들어가려하고 있는 우리 식구가 너무도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는 인류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또 어디선가 화학성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몸을 진화시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한 살충제를 사용할 수록 해충들이 더더욱 진화할 것이라는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예언만 보아도 내 상상은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으며, 한낱 미물이라고 여기는 바퀴벌레와 해충들을 없애기 위해 더욱더 강력한 화학 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는 인간들도 점차로 화학성분에 맞춰 자신들의 몸을 진화시키게 되는걸까?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읽었다. 고백컨대, 이 책을 읽기전 레이첼 카슨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머릿이 살충제로 알려진 DDT의 유해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DDT의 미국내 제조 금지와 환경보호를 위한 시민운동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레이첼이 살충제의 유해성을 대중에게 알리기 이전의 DDT는 머릿이뿐만 아니라 각종 해충을 박멸해 대량농업을 가능하게 했고, 뿐만아니라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는데도 유익한 살충제였다.

산업으로 인한 새로운 부가 등장하고, 과학기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사회적 순종이 강조되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화학물질들이 지구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레이첼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레이첼이 당시 이러한 주장을 펼때, 과학자들과 권력자들 역시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눈에보이는 현상이 더 소중했을 것이고, 실체적인 물질적 가치앞에 미래를 걱정하는 주장은 한낱 어린아이의 투정에 불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레이첼은 해충과 각종 병균과의 공존을 주장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다만 레이첼은 살충제와 제초제 대신 천적을 이용할 것과 지식과 자원을 총 동원하여 살충제와 제초제의 성분인 독극물 대신 덜 위험한 농약과 화학약품의 개발 외에도 비화학적 방법을 개발할 것을 주장했다.

그후,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가. 레이첼의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 놓은 50년 후의 지금 세상은 더 많은 살충제와 더 많은 원자력과, 더 많은 화학성분을 사용하고, 실제로 인간에게 미치는 화학성분에 의한 각종 질병에의 피해 또한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도, 인류는 여전히 더 많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열광하고 있다. 인류가 원하는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을 것을 구분해 내는 생태계에의 완벽한 통제, 완벽한 무균상태인 것일까. 내가 원하는 삶이 무균실에서의 삶이던가.

 

 

50년 전에 쓰인 레이첼의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밝혀낸 화학 성분이 오늘날에는 다방면에서 어느정도나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한편으로 나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대지 못하면서도 그다지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각종 화학물질들이 정부의 허가기준을 준수하고 있을지라도, 허가기준에 맞춘 미량의 화학물질들은 체내에 축적되고, 체내에 축적된 화학물질들이 서로 화합하여 내 인체에 어떠한 작용을 할 것인지 무척이나 공포스러워지는 경험을 했다.

5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화학성분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소박한 삶보다는 소비하는 삶에의 추종은 더욱더 깊어가고 있으며,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라는 생각은 이제는 논란거리 조차도 되지않는 실정이다. 이러한 인간의 오만은 삶을 더더욱 각박하게 하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은 낙오자로서 재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차단당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각성은 유해한 화학성분으로 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마땅한 권리를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레이첼 카슨의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들이 자신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것인지, 우리를 대신해 권력을 휘두를 사람을 결정하는 일에 조금더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되찾을때 인류와 지구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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