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며, 내 자신은 물론이고 참으로 많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유독 불행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가족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도 많은 가족들이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문제로, 피를 나눈 가족도 기본적으로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이다.

나와 타인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경계를 구분하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소통하는 것이 양질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란 피를 나눈 사이이고, 때문에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수시로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를 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속에서 관계가 악화된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하는 걱정의 진실은 도를 넘는 사랑이며, 사실은 간섭이며, 때때로 폭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으로 인해 속울음을 울고 있는지, 때때로 나는 나 혼자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곤 했다.

 

나는 평화로운 사람들을 늘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아왔다. 평화롭다라는 것은 안정된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엄마 아래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그토록 안정되고, 침착할 수 있는지 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여, 나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리컬한 성격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원망은 늘 과거를 향하곤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늘 용서할 수 없다고 외쳐왔다. 그럴수록 나는 늘 불행했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나는 엄마가 될 자격조차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결혼을 했고, 생물학적인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내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가 엄마인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때만 조건부적인 사랑만을 주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날이 흘리지 않은 날보다 많았고, 아이의 우울한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를 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마도 그것이 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내 안의 자라지 못한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강좌와, 책을 찾아 읽었고, 상담공부를 하며 실제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 혼자만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며, 내 시선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속의 자라지 못한 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외로웠니, 얼마나 두려웠니, 사랑받고 싶었구나...

이상한 것은 내 속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안을 수 있게 되자 내 아이의 못마땅한 행동들이 전혀 못마땅하게 여겨지지 않았을뿐더러, 그저 바라만 보아도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게서 평화로움과 안정을 느낀다. 더이상은 내안에 미움이나 원망이 없다. 그것은 내가 과거의 엄마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놓아버렸다. 이제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한계설정'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다. 가족이 꼭 반드시 사랑일 필요는 없다라는 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도 엄밀하게는 타인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불행한 가족사를 마감하는 첫번째 순서가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을 주변의 엄마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아이는 제2의 '나'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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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30 14:56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꼬마요정 2012-02-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문제는... 참으로 어려워요..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비의딸 2012-02-21 22:26   좋아요 0 | URL
웅..? 도움이 되신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더 많이 도움 받으실꺼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