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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ㅣ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평점 :
내 배 부를때 가끔 한번씩 생각하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김진숙 씨..
오늘이 단식 17일째인지 18일째인지 날짜조차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주제이지만 생각날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본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무슨탈이 났을까. 이건 뭐 걱정인지 불안인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관심이지만, 못내 불안하다. 어쩌면 이렇게도 무심할까 오십줄의 그녀는 차디찬 길바닥에서 곡기를 끊고 움푹패인 목울대를 드러내고 누워있는데... 그녀의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녀가 쓴 몇 편의 글을 찾아 읽었다.
어쩌면 이렇게 쓴 글마다 가슴 저아래가 뻐드득대면서 아픈 소리를 내는지.... (2010. 1.29일 메모)
처음 김진숙을 알게 된 것은 2010년 1월 경향신문에 실린 하종강의 글을 읽고서였다. 하종강에 의하면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은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앞에 홀로 텐트를 치고 앉아 십몇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였는데, 나는 불현듯 나타난 그녀의 이야기가 못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터넷 서핑으로 그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찾아낸 그녀의 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를 읽는 내내 가슴 속에 찬바람 한줄기 윙윙 소리를 내었다. 내가 알던 노동자 전담 인권 변호사 노무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애도하던 글이었는데, 참 야속타 싶었다. 어느 쪽이건 내 쪽이 아니라면 다 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그리고 몇 일 후 그녀는 단식 농성을 중단했다.
다시 김진숙이란 이름이 신문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떠오르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에는 농성장을 크레인 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85호 크레인을 선택한 것은 2002년 바로 그곳에서 129일 동안 농성하던 김주익이 목을 맨 곳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랬다해도 쉰이 넘은 해고 노동자가 20여일을 단식하며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잤을때도 몰랐던 사람들은 여전히 몰랐고, 혹은 모르는 것처럼 살아갔다. 그러나 모르쇠로 일관되던 한 노동자의 투쟁은 곧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참 많은 사람들이 크레인 위의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즈음 <소금꽃 나무>를 책꽂이에 꽂았다. 꽂아만 놓고 읽지는 않았다.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에 책을 구입했지만, 나는 노동자가 아니였고 노동자의 삶을 알지도 못했고, 알지 못했지만 대충 노동자의 삶이 어떨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그녀의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구구절절히 한맺힌 사연일 것이 뻔했으므로.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어설프게나마 그녀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날린 첫 멘션에 답글이 왔을때 괜히 코가 찡했다. 어설픈 나의 치기가 그녀에게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 멘션.. 그녀의 고공투쟁이 헛된일만은 아니니 힘내시라는 요지였는데 "누군가의 목숨은 사위어가고"라는 그녀의 답은 너무나도 쌩하게 찬바람이 불었다. 선의가 선의로 전달되지 못했을때의 민망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후, 다시는 그녀에게 멘션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올리는 글을 읽었고 마음으로만 응원했다. 무사히, 오늘도 무사히, 곧 내려오시라...
309일만에 땅을 밟은 그녀는 아직도 여전히 병원에 있다. 그리고 몇일전 트윗에서 본 그녀는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이 '고맙습니다'이며 누구보다 고마운 그사람은 아직도 갇혀있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꽂아놓기만 했던 그녀의 책 <소금꽃 나무>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 본 적도 없다.
....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다.
억울하다고, 이럴수는 없는 거라고, 난 빨갱이가 아니라고....... (책에서)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과거 운동권이였을 어떤이가 트윗을 통해 고공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목숨을 받쳐야 할 때'라는 글을 보내왔더란다. 그래서 그녀는 답했다고 한다. '너나 죽어'.
노동자가 아니였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몸으로 일을 해야만 먹고살아지는 그런 노동자가 아니였다면, 그녀 아버지의 표현대로 그녀가 높은 공부를 했더라면 그녀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자신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처음 읽었던 그녀의 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와 똑깥은 강도의 아픔으로 가슴 저 밑바닥의 뼈들이 뻐걱뻐걱 소리를 내고, 끝없이 가슴 속으로 속으로 질척한 물이 흘렀다.
도저히 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없게 처참했던 그녀의 삶을 어설프게 추측했던 내가 너무도 죄스러웠다.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알량한 내 자만심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니라고 믿었던 노동자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었음을 알게되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표면적인 배움 밑에 깔린 노동에 대한 경시가 몸에 밴 나는 노동자임을 거부했다. 나는 몸을 써서 먹고 산 그런 노동자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책상에서 펜대를 굴렸으니까. 그러나 이제야 안다. 나는 노동자, 그토록 부끄러운 이름의 노동자 였다. 내 남편도 노동자, 전문직으로 남들보다 편하게 자식들을 키운 내 아비도 자본 앞에 비굴했던 노동자였다.
오늘자 신문에는 그녀가 크레인 농성으로 업무를 방해한 죄로 부산지검에 의해 불구속 기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해고 노동자 김진숙을 자유롭게 해달라. 그녀의 꿈인 그녀 소유의 단칸방에서 따뜻한 된장찌게가 끓을 수 있게 그녀를 이제 그만 놓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