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나, 서아시아에서는 활발한 내전이나 전쟁에서도 보이는, 제국주의 질서로부터 빠르게 흡수되거나, 미약한 투쟁들도 보이지만, 정작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계급 투쟁에 대한 과학적인 견해들이나, 소비에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일부만, 적용한다는 특징은 있다. 그리고 계급 투쟁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잘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두 국가 지역으로도, 훨씬 더 폭 넓은 혁명에 대한 수입이나, 수용을 이론적으로 전달해야 할 임무는 있어 보인다. 


바로 유럽이라는 국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동유럽과 서구식 문화를 혼합(융합)하거나, 받아들인 사람들로는, 자칫 동아시아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움직임이 매우 빠르고, 특히나 중국, 베트남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에서도, 독재에 대한 반대하고, 민중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계급 투쟁이나, 독재 정권에 대한 반발을 요구하거나, 민주화로부터, 착취를 고발하는 내용들도 있어왔다. 그러나 어느 국가든, 동아시아에서도 다음으로는, 혁명에 대한 전망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는 데, 특히 시베리아로부터, 시작한 마르크스주의 운동들은,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도 옆 국가들로부터, 이론들을 수입하거나, 비록 대부분은 망명지였음에도, 혁명가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특히 극동 아시아를 따로 다루는 이유란 바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들에 대한 주 활동지이자, 무대가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고, 공산주의 운동들도, 어떻게 확산할 수 있었고, 또한 계급 투쟁이라는 성과와,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었는가를 세부적으로도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간과하기 쉽지만 일부 러시아 급진주의 운동과도 어떤 점에서, 무엇이 매우 달랐는지도 말할 수 있다. 


- 시베리아. 


- 동아시아. 


- 만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시스트. 


파시스트에 대한 여러 정의들도 많이 나왔다. 정작 제국주의 아래로부터 쉽게 결탁하거나, 파시스트를 매수할 수 있는 자본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중간 계급만이 아니라, 계급적인 층위로도, 어디서든 출몰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가진다. 그러나 같은 위험으로는 주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오래된 선입견들로 누적된 편견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므로, 그들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자본가들 가운데 하수인으로는 오랫동안 똑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주어진 자본이나 공돈들도, 그들의 배를 불리는 데도 넉넉했기 때문에 금융 업계로도, 정치적인 브로커를 도로 매수하기란 매우 쉽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덕분에 파시스트로 가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선택이지만, 지배가들은 잔머리를 잘 굴린다. 괜히 파시스트들이 출몰하면 사람들이 공포에도 쉽게 질리고는 대응하지도, 대책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로 무방비로 노출하는 이유들로 보더라도, 파시스트들에 대한 연구를 주로 심리적으로만 다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파로부터 추종된 견해가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숨은 역사마저 있다. 따라서 너무 오랫동안 거드름을 피운 파시스트를 너무 일찍 상대하거나, 방해 공작에 휘말리기 보다는, 그들마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채로 오랫동안 다퉈왔다. 그리고 무력한 틈을 타서 히틀러는 다시 집권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역사를 보면 참 안타깝다. 


화를 품고는 화두를 던지고 만 말썽 꾸러기를 어찌할 줄 모르는 부모들에게 매가 꼭 처방이 될 순 없듯이, 때린다고 해서 쌓인 응석마저 그대로 풀렸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할 말도 참 많겠다. 

더 큰 폭력을 미리 막고자 한다면, 적어도 서로 다른 반경을 파악할 필요는 있겠다.

대응으로 제안하자면, 파시스트로부터 공포를 떨거나, 협박으로 사로잡히기보다, 

할 수 있는 혁명 활동으로 집중하는 게 더 알맞다고 본다.    


정치 깡패. 


민족 운동이 먼저였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없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옛날 깡패들은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경우들도 참 많았다. 깡패라고 해서 꼭 파시스트는 아니겠지만, 정치로 가담한다면 말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이 선동, 선전만으로는 그들에게 주적인 공산주의를 탄압하기란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를 고용하거나, 민간인을 폭력하고, 학살하고, 협박하면서 모은 거액 금액을 탈취하거나, 고용한 정치가를 투표로로 부상하도록 돕고는, 권력을 찬탈해왔다. 그리고 매수할 수 있는 자본을 가졌으므로, 과거 행적들을 쉽게 숨긴다는 특징도 가진다. 이를테면 민중에게는 적이지만, 보수당에서는 내세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도 미군에 대한 원조를 늘 요구했었고, 친일 행적들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는 정치 깡패를 고용했기 때문이다. 괜히 자신들의 투표를 위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공직에 오른 인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란 그러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입장들을 반대하면, 자신들의 적으로 몰거나, 그들의 명분으로 삼아서는, 정작 자신마저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마저 간과하고는 몰랐으므로, 파시스트들은 어느 곳에서나, 심지어는 사상과도 무관하고, 정치적인 입지를 공고하도록 하거나, 더욱 확고하게 하고자, 단체들을 고용하고, 무리로도 뒤섞여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일본도 왜 제국주의이자 파시스트 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가. 바로 해외로도 배운 유학파들은 정치 깡패들로부터 정계로도 쉽게 진출할 수 있었고, 곧바로 행적을 숨기고는 정치가로도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또한 간과하기 쉬운 점으로는, 행적을 버리고, 도피한 친일파였던 국내 파시스트들도 정치 무리에도 뒤섞여 있다는 점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해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겠다.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파시스트들도 흥미로워할 수 있다.  


주사파. 


국내로는 북한을 심도 깊게 다루는 연구원들도 있다. 주로 국방부 연구원들이다. 그들은 주체 사상을 실은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게 아니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때로는 북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국방부 연구진들은 주로 반공 교육을 위해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오래된 관습이 남는다. 왜냐하면 전쟁에 대한 확전만이 아니라, 민족 해방이라는 명분을 둔 분쟁 국가들 사이에서 서방 국가에 대한 무기 지원이나 원조로부터 제시한 제안들에서도, 지도자를 설득하려 들지만, 맨 처음부터 주사파들은 일부로도 자신들의 반미, 반전에 대한 입장들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민족 해방(NL)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실제로 분단이 일어났을 때, 세울 수 있는 구호는 아닌 듯 보인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하거나, 내전으로부터 진영이나 양쪽 간 대립으로부터 심화된 양상을 보일 때는 주로 민족 해방을 내세우기 보다는, 국내로는 주로 '전체적인' 사상에 대한 입장으로 분명하게 가르거나, 편향된 선택을 강요하고, 한 쪽 입장을 지지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사파라고 해서, 북한을 추종한다거나, 그렇다고 지배자들과 타협하는 쪽을 꼭 택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부르주아들이라는 인식은 있고, 그들마저 내부로는 매우 날 서 있고, 또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주파. 


주로 같은 계열 사람들로 보기도 하지만, 주체에 대한 믿음에 기반했거나, 반미에 대한 입장을 더욱 명확하게 내세우는 쪽이긴 하다. 그러나, 국방부 연구원들 보다는, 주로 대학원 연구원들도 포진하거나 주를 이룬다. 그래서, 심각한 검열이나 탄압을 받더라도, 일부 연구비에 대한 개인적인 지원에서 멈추거나, 국가보안법에 따라 일부 제약을 받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란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도자로부터도 폐기해야만 하는 수순을 절차로 밟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오래 전 민주화 운동에서도 행적이나, 고문에 대한 증거들에서도, 국가 보안법은 보다 강력하게 반미를 내세우고, 민족 해방으로부터 투쟁을 지지하던, 연구원들이나, 운동가들에게도 심각한 제약을 가해졌기 때문에, 주사파들로부터도 많은 분쟁들은 있어왔다. 그리고, 주로 학생이나 대학원생 계열들이었기 때문에, 소수 학생들이던 재야 운동권 인사들도 흩어졌고, 가담했다. 따라서 이제는 대학원생들을 이루는 지식인들이나, 연구진들일 수 있겠다.     


민족 해방.


민족 해방. 나라를 아끼는 좋은 말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노동 계급 탄압에도 앞잡이로 협력하기도 했었고, 부르주아지들도 내세우는 논리이다. 일부 지배 정당 내부를 보더라도, 주체 사상에 대해서는 이를 간다. 그러나, 주로 이를 가는 정치가들은 정작 주사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도 탄압이나, 착취로는 다시금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일부 지배 정치가들은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내리고는, 일부 NL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감면해주거나, 지조를 지키고자 똑같이 노력해왔다. 노동 운동에서 오랜 기간 가담했던 선두로 나섰던 일부로는 고문을 받거나, 탄압을 받는 모임이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졌으므로, 주로 오래된 지면 간 논쟁이나, 학생 운동에서 주로 민족 해방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지식인, 대학생들 집단들은 훗날 부르주아지가 되어 결탁한 운동권 인사들이라는 뚜렷한 한계도 있으므로, 부르주아지들과도 쉽게 타협하는 관계로 드러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경제주의. 


- 본격적으로는 개요로 드러나겠지만,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에 대한 정치 경제학에 대한 모순들,경제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주요한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개량화로부터 출발한 현대 경제학에서 속류화하고, 수정된 기회주의 경향(흐름)들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으로 개설한다.    


수정주의와 반자본주의.


- 일부 경제학 지식인들이 보는 국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그럴듯한 호황을 호언장담하는, 허항된 전망을 두고는 정작 체제 모순을 지적하지는 못하고, 일부 '수정주의' 관점들에서도 내세우는 반자본주의 경제관들이 실제로는 세계적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만, 지배가들로 모인 체제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고 보고는 다시 자본주의를 수호하거나, 또 더욱 공고하도록 만드는 근거들이라는 점이다.


현대 부르주아지라는 대재벌들의 역사. 


- 각 정권 시기 별로, 혁명 투쟁을 무시한 역사로나, 착취한 역사로부터 자본주의는 국내에서도 

공업화, 철강 산업 시기, 해외 원조들에 대한 모순들로부터 진상에 있어서도, 노동가들에 대한 

구속과 감금을 보여줬으므로, 대재벌로 이뤄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기여들, 소기업가들로부터

'그들이라는' 대 자본주의 역사를 꾸려 나갔는지를 검토해본다.       


각 정권들의 지배 탄압과 브로커들. 


- 레닌, <제국주의>에서 지적한 자본가 브로커들로 모여진 '카르텔'들이 현대로는 더욱 포악하고, 암묵적으로는 크고, 작은 은밀한 비밀들도 있어왔다. 그리고 독점적인 트러스트들과 자본 유착 관계도 따로 보고한다. 여러 예시들도 있지만, 작은 본보기로는 거대한 도시 건설로부터 건축업체, 시공사라는 공공 부문, 사익 비리로도 드러난 노동 역사와도 일치한다. 국내로는 지배적인 건축가들마저 부르주아지아와 결탁한 설계 부문에서도 해외 자본과는 오랫동안 기여해왔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배 과학이라는 종교. 


일부 혁명가들은 줄곧 개인에 대한 신앙을 크게 가졌거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에도,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일종의 거부하는 태도를 지녔다. 혁명 지도자로 한해서는 종교 당사자들과는 토론하기도 했었고, 주로 말 그대로,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교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두고도 혁명 국가로부터 인민들로는 효과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신념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종교를 가진 일부 사람들로부터도 오랫동안 배척 당해 온 역사는 있었다. 바로 마르크스도 말했던 오래된 진리 때문이기도 하다. 민중들에게는 종교라는 아편으로부터도,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행하고, 긍정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도 봤던 순교자, 선교자들마저도, 오랫동안 종교는 지배 체제만이 아니라, 관념적인 사상으로도, 숭고하고 또 복잡하게 이뤄졌다. 아무리 종교를 계급적으로 나눈다고 할지라도, 끝으로는 종교는 다음 지배 체제로도,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제거하고는,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도, 부르주아 역사관으로는 정치만큼 일부분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아무리 세속주의만으로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종교라는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 숭배만큼이나, 지독한 혁명가들에 대한 숭배로도,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혁명가들은 죽어서도 초상화와 동상이라는 우상으로 남는다고 토로하고 지적했다. 무분별했던 부르주아 혁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부터 대중들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벗 삼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고는, 많은 오래된 사회주의 투쟁마저 종교화했다. 여기서 과학이란,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전파하고자 만들어진 관념이었고, 또한 바로 지식인들의 머릿 속에서만 꾸며진 불합리한 이상향에 대한 믿음들로 모여진 색안경이자, 선입견들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은 종교적인 믿음으로는 투쟁도 강조해왔지만, 자본가들이 된 그들에게, 투쟁들에 대한 믿음마저, 혁명이라는 이상향으로만 색칠하고는 공상해왔고, 더불어 노동가들도 파괴해왔다.  


프롤레타리아트 무신론. 


러시아는 정교회가 있어왔다. 그리고 소비에트 때는 종교적인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특히 교회로부터 부정된 권위에 대해서도 많이 부정해왔다. 덕분에 노동 계급들은 더욱이나, 사상에 대한 교육으로는 종교를 보다 비판할 수 있었고, 혁명으로도 지위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러시아를 보더라도, 현대 자본주의로는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를 기반 삼거나 근거로 해서는 바로 정교회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나갔고, 지도자들도 해당 종교를 비단 교회만이 아니지만. 많은 대중 세력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확보한 종교들은 정치에서도 진출하고,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반동적이기만 한 비밀 교도나, 덕분에 이름도 듣지는 못했던 종교들도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따라서 회의를 느낀 무신론에 비중들도 '반사적'으로는 늘어났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한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는 종교로부터 사유 재산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착각도 같이 전파한다. 따라서 바로 그들로는 '민주적인' 선택일지라도, 종교적인 범죄들도 정당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다만 러시아 뿐 만은 아니겠다.  


물론 억압하거나, 억지로 금지한다고 해서 막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상태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는, 도저히 중독된 말이기 때문에 설득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적어도 앞선 종교에 대한 부르주아들로부터 조직 기구에도 참가하고, 꿈마저 이룰 수 있다는 신성한 믿음과 교리들에 대한 각 신앙이라도,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활동에서도 소외하도록 만들고는, 제약을 걸도록 제동할 수는 있다. 이제는 부르주아지들에게도 '신성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론마저, '안전한' 지식인 종교가들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도 쓰였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로는 과학이라 믿는 종교라면, 우리는 모두 함께할 수도 없고, 또한 해석만으로 이뤄진 복잡한 논의들로부터도 그들의 선에서도 아쉽더라도, 끝내야만 옳다고 본다.  


사이비. 


앞서 말했지만, 사이비는 마르크스주의 앞에서도 붙을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그들만의 '전통'과 정통만을 강조하고자 쓰일 수 있으므로, 

분간하고자, 계란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면, 무의미하므로, 먼저 생략하겠다.  


아이들에게 산타가 있다고 늘 말해줄 순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