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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제: 재벌가란 현대 부르주아지이며 자산가이다. 


소전제: 부르주아지들은 축적 자본을 여러 문화로도 섭렵하고, 또한 집적한다. 


요구하는 주요한 응답. 


그렇다면 왜 생산 문화는 부르주아지들의 지배 사상으로도 수용되는가.


문제에 관한 세부 문의. 


- 제국주의 아래에서도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들은 어떻게 자본주의로부터 희석된 문화일까.   


- 정도로 보자면 부르주아지 문화는 규모 면에서 어떠하며,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인가. 또 얼마나 자본주의 가동에도 암암리에 기여하는가. 


- 생산되는 미학적 평론과 소비가 어째서 부르주아지들의 재산 축적 수단이자, 오랜 방식이 되어왔나. 심지어는 왜 사적 소유의 일부로 기능하는가. 자본의 회전에서 이와 같은 반복된 생산물들은 

어째서 오랫동안 순환하여 반복된 항성을 가지는가.    


- 초과가치(잉여가치)와 지배·문화 축적 방식에 관한 상관 관계. 


-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인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 시 여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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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렸다. 반환되거나 환수하지 못한 문화재도 여러 점 있다. 무기 전시관은 따로 없어서 칼에 대한 유물들을 잘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국궁이 유명하다. 그럼에도 옆 나라들에 비하면 무예 실력도 출중했다. 하지만 정작 문화재들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나 소실로 인해 훼손되거나 다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무라이 정신이란 실제로는 약탈과 범죄로 무장한 침범을 일삼았고, 악랄했다. 물론 조선도 양반 정신이 그렇게 썩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기생과 노비를 뒀기 때문에 신분만 세탁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는 국내에서도 예술과 무기 문화를 전파했고, 바로 옆 나라와 교류하는 나라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문화재청>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못한 문화재들이 상당 수 있다고 들었다. 2023년에만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교류가 깊은 독일에서도 한국 칼에 대한 문화재가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화재들은 왜 해외로 퍼질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조선 후기로 들어갈수록 일제에 대한 침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폭 넓은 개방 정책이 오히려 독립 문화재마저 수출하고 수입하는 자본 거래의 대상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같은 문제를 식민주의로만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본 식민지를 전제한다. 그러나 조선 왕조도 근대화에 따른 개항을 추진하더라도 정작 봉건주의라는 잔재 속에서 제국 간 전쟁을 옹호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 식민주의에 따른 소실된 문화재만이 아니라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특히 아메리카와 유럽 등지에서도 국내 문화재를 여럿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존재한다는 점을 잊곤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도 문화재에 대한 노력을 서로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여태까지 국가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제한된 관람을 보여주는 이유란 무엇일까. 바로 부단하게 정치적이고, 문화재는 자본 거래에 대한 대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궁만이 아니라 무예 실력도 출중했던 충무공의 칼만이 아니라 수 많은 전쟁에 참가했던 국내 검객들은 예전에는 무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 많은 문화재가 다시 국내로 반환하고, 환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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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공공시설을 이용하면서 든 청결 문화를 제기한다. 청결이란 꼭 강박적이고, 강압적인 도덕에 기반해서 법과 규칙을 철저하게 엄수하자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결이란 매우 비상식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수준에서 또는 같은 범위로 적용해서 이해하는 게 더 알맞다. 이를테면 공공 문화에 있어서도 담뱃재와 꽁초를 아무대나 버린다고 해서 흡연은 나쁘다고 규정하는 초보적인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지물이 그릇됐다고 해서 자위를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충족할 욕구를 사전에 미리 차단하고, 또 다른 권위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문화를 조성하는데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러한 행위를 불법이라고 쉽게 간주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시로는 한 음악이 외설적이라고 해서 그러한 음악을 듣지 말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남한에서는 언론에서도 시위나 집회에 대한 선진 문화를 문명에 대한 진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시위 문화로 보자면 과연 인민들에 대한 수준에서도 같은 이해를 전제하는가. 꼭 그렇지 않는다고 봐야만 옳다. 왜냐하면 외신 보도에 따른 선진 문화가 아무리 자리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부르주아지들로부터 집단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정치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형태란 오히려 자본주의로부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때로 재벌과 자본가들은 철학을 건드린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는 선진적인 문화가 모든 사람들에도 이로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격한 진압 그리고 모든 시위와 집회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또 다른 무도덕하고, 파렴치한 일로 보더라도, 오히려 선진 문화라면 모두 진보적이라고 착각한다. 파시스트적인 강경 진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제국주의와 같은 학살 국가이자, 전범 국가들에서도, 과연 남한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상식으로 말하는 선진 문화란 바로 청결 문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공공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왜 밑줄이 그어지는가. 그리고 수정하고, 찢고, 낙서를 하는가. 우리는 물건마저 의식 없는 상태에서도 자주 소유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모두가 빌려보는 책임에도, 그러한 청결에 대한 문제라면 지적할 수 있어야만 하고, 또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혁명에 대한 사소한 임무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한 되묻고는 싶다. 자본주의에서 과연 문화는 청결한가. 그리고 주변 환경은 깨끗하다고 볼 수 있는가그리고 남한도 선진 국가라고 보지도 않는다. 떼를 지어 움직이거나, 무리 짓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왜 그러한 집단들은 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일을 감수하도록 일거리를 던지는가라고 묻는다. 따라서 우리는 남한에 대한 선진 문화라고 불리는 정치적인 의식이 과연 계급 의식과도 무관한지를 더욱 따져 묻는다. 우리는 이번 집회와 시위에서 차기 정권을 둘러싼 탄압 고조와 탄핵에 대한 찬반 여부 따위가 아니라 우월한 인종 대청소와 같은 정작 무관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싹 다 정리하는 계엄을 찬성하는가로 본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지지에 대해서는 모두 매우 반대한다. 부르주아지들이란 오히려 위선이라는 가면을 쓴 채로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고, 쓰레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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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을 회상하며>.


"1906524, <물결>은 폐간됐다. 그러나 이틀 뒤로, 1906526, <전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행했다. <전진>1906, 615일까지 있었다. 1906, 622, 볼셰비키 새로운 기관지 신문, <메아리>를 출판할 수 있었다. <메아리>1906, 77일까지 있었다.


예시: 당 기관지, <메아리> 1호.


주제: 마르크스주의와 미학. 


자유 기고. 단 적절한 논리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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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과학적인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한 뒤로 가정한다면, 몇 가지를 적용해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문화에서도 해당한다. 우선 익숙한 자본주의 체제 속 사회에서도 

누리던 자본 문화들은 폐기하고 모두 일정한 혁명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지배적이기만 하던 부가적인 양식들은 폐기하거나, 

맨 나중으로는 완숙한 무산 공산주의로 정점을 누릴 수 있겠다.  

각 운동이나 투쟁 내용들도, 공산주의 속으로 잘 구분해서 다룰 수도 있다.   

완수한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보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자본가들을 위해서만 일하던 노동가들도 척박하기만 하고, 턱없이도 부족하기만 하던 

여러 시설을 위해 직접 계획하거나, 제작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    


방송국. 


작은 혁명 방송국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전에는 거의 매번 라디오랑 대화했었다. 

현 사회로는 어느 라디오를 청취해봐도, 방송이라는 매체를 시청해도,  

자극적이고, 눈 아픈 영상이 책보다 유익한 적이 있던가.   

자본주의를 선전하고, 제국주의를 선동하는 매체는 끄고, 

프롤레타리아트로는 혁명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우습겠지만, 내용들도 주로 공산주의 혁명사로 옮겨진다. 


도서관. 


공산주의를 주로 다루는 도서관이다. 

대부분은 혁명 서적으로 비치한다.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모아 놓은 곳이다. 

번역하고, 정리해서, 책으로도 잘 묶어 모아 분류마저 잘 된 곳이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도록 공원을 조성하고,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실도 잘 꾸민다.  

빌릴 때도 밀리지 않도록 충분한 서적들은 여러 권 있다. 

또한 검열마저 생각하던 우리말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보급소.


완수한 혁명에 대한 본보기로는 역시 경제 문제이다. 식사 중요하다. 그러나 식량은 선택에서도 더 중요하다. 이전까지 자본주의 경제로는 식량 생산이나 보급들은 유통에서도 부패하거나, 노동 과정에서도 부실한 식사마저 참 많다. 개발과 계발에만 몰두한 탓에 말만 앞섰지, 정작 농촌 지역에 대한 관심은 더욱 부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 문제로는 필요하다면 따로 공동 운영 식당을 정하거나, 시장 경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자율적이기 때문에 계획하고 생산물에 대한 분배로는 신중하게 다루고, 계산한다.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능력만큼 일하기 때문에, 폭 넓은 생산물을 분배 받거나, 직접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가격 경쟁 따위가 아니라, 직접 생산물에 대해서는 소외를 받는 착취 노동이 아닌, 보람을 얻는 일이다.      

    

두 영화를 추천한다. 


1. 라울 펙, <청년 마르크스>.


2. 스티븐 소더버그, <체 게바라>. 


두 영화로는 모두 자본주의 상업 영화로 제작하고, 수입했기 때문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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